폐플라스틱·폐비닐이 기름 된다

고분자화합물인 석유화학제품은 저온 열분해 과정을 통해 다시 석유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저온’이라 함은 연소 시 800도 이상의 고열반응이 필요한 소각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온이라고 할 수 있는 300~400도 수준으로 용융·열분해시킨다는 의미입니다.

밀폐된 반응로에 석유화학제품을 넣은 후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가열 용융하면 LPG가스와 경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의 품질에 따라 중질유 또는 경질유를 얻게 되며 생수 페트병과 같이 양질의 재료인 경우 휘발유에 준하는 품질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의 원천은 1970년대 독일의 함부르크 대학에서 최초로 제안되었으며 독일, 일본, 중국 등에서 상업화 과정을 겪으며 발전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1997년 사이 통상산업부의 용역 프로젝트로 LG화학에서 기술을 완성하여 저온 열분해 유화기술이 폐플라스틱 재활용 및 자원화에 있어 획기적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저온 열분해 유화기술, 왜 오랜 세월 사장되었나?

2021년 현재 우리나라의 저온 열분해 유화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손꼽을 만큼 연구와 발전을 거듭해 왔으며 상업화에도 성공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러한 훌륭한 기술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국민들이 대부분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렇게 좋은 기술이라면 왜 대기업들이 뛰어들지 않았을까요? 간략하게 몇 가지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단순 경제성 논리의 문제입니다. 소각방식의 경우 당장 폐플라스틱과 폐비닐을 태워서 얻은 열로 물을 끓여 스팀을 얻고 그것으로 난방용으로 쓰거나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던 기존의 방식에 비해, 저온 열분해 기술은 공정도 까다롭고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었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상업화의 벽은 너무나 높았습니다.

그러나, ‘지구환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달라지게 됩니다. 이산화탄소, 다이옥신, 미세먼지 그리고 온실가스 효과까지 고려했을 때 경제성 논리는 완전히 역전될 수밖에 없으며 그렇다면 적어도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는 이산화탄소를 뿜어대는 소각방식을 억제하거나 축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저온 열분해 유화기술에 주목했었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둘째, 환경부 정책당국의 과오입니다. 1998년 이 기술을 완성한 LG화학 연구진은 ‘이 기술은 플라스틱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생산에서 소비, 폐기에 이르기까지 일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정책당국의 방향 설정과 전폭적인 정책 지원 그리고 자금 지원이 필수임에도 환경정책 당국은 그것을 방기하였습니다.

그에 더하여 폐기물 처리 절차에서의 비합리적 계단식 구조를 만들어낸 환경부마피아(환피아)들의 정책적 과실과 직무유기는 ‘경북 의성의 쓰레기산’, ‘쓰레기 컨테이너 필리핀 수출’, 심지어 최근의 ‘조폭 폐업공장 임대, 쓰레기 쌓아놓고 수십억 편취’에 이르기까지 아직까지도 정책적 난맥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이 부분 별도의 글로 다루겠습니다)

셋째, 대기업 OIL CARTEL의 무관심과 높은 장벽입니다. 국내 정유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대기업들 입장에서 이러한 저온 열분해 유화기술은 그저 귀찮은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양질의 경유를 얻기 위해서는 적절한 정유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유회사들이 도와주지 않으니 이 기술을 통해 생산된 결과물은 그저 ‘유사석유’라는 별칭 속에 묻혀 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민간업체들이 맨땅에 헤딩하듯 연구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하거나 사업을 전환하기도 했지만, 이 기술이 갖고 있는 잠재적 위력과 가능성을 알았던 민간기업들의 꾸준한 연구와 투자 그리고 기술발전의 결과로 이제는 대기업들이 협약서나 계약서를 들고 달려갈 만큼 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화제의 중심으로 떠 오른 ‘저온 열분해 유화기술’

2019년 7월 제주도의 저온 열분해 유화기술 업체인 제주클린에너지와 SK이노베이션의 MOU 체결은 국내 유수 석유화학 대기업들이 플라스틱 열분해 사업에 줄줄이 뛰어들 것을 선언하게 된 기폭제가 되었고 한 달 뒤인 2019년 8월 국회에서 열린 <플라스틱 재활용 활성화 정책> 세미나는 저온 열분해 유화기술의 우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세미나를 주관하였던 한정애 의원은 영국에서 산업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가로 2020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거쳐 2021년 현재 환경부 장관이 되어 저온 열분해 유화기술 업체를 방문하여 격려하고 정책적 지원을 약속하는 등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비록 늦은 감은 있으나 지금이라도 저온 열분해 유화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정부 당국에서도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긍정적인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상철 진실의 길 대표이사전 천안함 진실규명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친환경 폐기물 자원화 연구 활동가
신상철 진실의 길 대표이사전 천안함 진실규명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친환경 폐기물 자원화 연구 활동가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입니다. 위기가 기회라고 했듯 과거 SRF 정책의 실패를 딛고 오히려 친환경 폐기물 처리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과오를 거듭한다면 향후 20~30년 동안 대형소각과 탄소 배출의 굴레에 얽매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입니다. ‘대형소각’을 포기하시든 아니면 ‘생태수도 순천’을 포기하시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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