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용산장터 마실장

장바닥에는 사람이 있어야 돼!
그래야 장바닥이제!


“요란하게 메구치고, 노래 부르고, 시끄럽게 하는데 혹시 장사하는데 불편하지 않으세요?”
“워메! 불편한 장이 어딨당가? 모름지기 장바닥에는 사람이 있어야 돼. 그래야 장바닥이제.”

장흥군 용산면 오일장인 용산장터에는 한 달에 한 번 왁자지껄 북새통을 이룬다. 귀농, 귀촌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꾼 농산물과 수공예품들을 들고 나와 팔기도 하고 물물교환도 하는 ‘마실장’이 열리는 날이다.

▲ 알음알음 모여든 사람들로 마실장은 왁자지껄 북새통을 이룬다.

용산장은 1일과 6일에 열리는 오일장이다. 제법 컸을 법한 용산장터는 교통이 편해지고 읍이 가까워 장흥장으로 사람이 몰리면서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곳이다. 어물전 한 곳, 채소전 한 곳, 건어물전 한 곳, 장날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휑하다. 이 텅빈 장터가 ‘마실장’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 장흥 용산면 마실장은 1일과 6일 중 주말과 겹치는 날로 한 달에 한번 장이 선다.

재래시장에서 빠져서는 안 될 어물전 아주머니는 고요하던 장터가 시끌벅적해서 좋다. 사람이 있어야 장바닥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제야 장바닥 느낌이다. 우두커니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장을 찾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간절했던 지난날들이었다. 그렇다고 매출이 껑충 널을 뛰지는 않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활기를 되찾은 장바닥이니 마음이 풍족해지는 것을.

“여그 사람들이 와야된디 아즉은 여그 사람들이 별로 안와서 거시기해. 알려지면 굿 보러라도 오것제.”

건너편에 앉아 있는 건어물전 아짐도 그다지 물건이 팔리지 않지만 우세두세 모여든 사람구경만으로도 즐겁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 둘 모여들면 조금씩 조금씩 장사도 잘 될 것을 믿는다. 기다릴 줄을 안다.

“교통이 편한께 큰 장으로 가블고 여그는 잘 안나와. 그래도 사람이 없다가 요렇게 모이니 아무래도 좋제! 안근가?”
 
▲ 마을 사람들도, 장사하는 사람들도 사람이 모이니 좋다. “사람이 있어야 장바닥이제”


알음알음 모여든 사람들

▲ 마실장을 최초로 시작한 김승남(47세, 용산면)씨. 인근 몇 사람이 서로 소식도 전하고 재밌게 살아보자고 시작했다. 그렇게 모여 ‘마실’장 간판도 손수 만들었다.
메마른 땅에 새 순이 돋아나는 느낌이다. 구도심권 많은 오일장이 맥을 잇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지금, 새로운 모습으로 마실장 꽃을 피운 장본인은 이곳 용산면으로 귀농한 김승남(47세)씨다.

일 벌리기를 좋아하는 김승남씨는 수도권에 살다가 장흥으로 귀촌한지 14년째 되는 농촌 아줌마다. 1년 전 농사를 짓던 주변 아줌마 서너 명이 ‘모여서 놀자’하는 마음으로 장을 시작했다. 하루 만나서 서로 사는 이야기나 나누자고 장난삼아 시작한 마실장이 알음알음 모여진 사람들로 오늘날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소문이 나서 구경을 오는 사람이 많아요. 어떤 사람은 아주 큰 장으로 생각하고 왔다가 ‘이게 뭐야?’하는 경우도 있어요. 크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이런 모습이 좋은 것 같아요. 장사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관계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장이 열리는 중간중간 풍물굿판이 펼쳐진다. 누구의 안내방송이 없어도 장사하던 손을 놓고 악기를 둘러맨다. 전문 풍물꾼들이 아닌 이 사람 저 사람 장에 온 사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가락을 친다. 그 굿이 어떤 가락인지, 박자가 맞는지 틀리는지, 잘 하는지 못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 장을 만들어 가고, 함께 가락도 맞추고, 함께 흥겨우면 된다.

▲ 장이 열리는 틈틈이 풍물굿판이 열린다. 가락을 치는 사람은 전문 꾼이 아닌 장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다. 누구랄 것 없이 장사하던 손을 놓고 함께 흥을 돋는다.

▲ 장사하다가 북도 메는 아마추어 풍물꾼 최혁봉(41세, 벌교)씨. 돈을 벌기위해 온 것이 아니라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서 장에 온다.
“북을 잡은 지 두 달 됐어요. 배운 적도 없고, 할 줄도 모르는데 눈치껏 따라하다 보니 재미가 있더라고요. 풍물 가락은 자연 속에서 나는 소리 같아요.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나무 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자연의 소리가 우리 가락에 녹아 있는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쳐지더라고요.”

어쩌다보니 북을 잡고 굿을 하고 있다는 최혁봉(41세)씨는 아내와 함께 재배한 고구마를 가지고 와서 고구마도 팔고, 고구마튀김도 팔고 있다. 최씨는 인천에서 살다가 벌교로 귀농한 지 10년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감정대로 살고 싶었다. 아이들 양육까지 책임져야 하는 부담으로 농사가 쉽지 않았지만, 자신을 낮추고 농사기술도 배우고 하니 조금은 좋아졌다. 무엇보다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맞춰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살고 있어서 행복하다.
 

원칙은 없다. 스스로 가격을 조정한다.
그게 장이다.

“동네 어르신이 외출 채비를 하기에 어디 가시느냐고 물었더니 ‘집이들 하는 거 보러 갈라고’라는 말씀을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김승남 씨는 장이 너무 커지면 처음 시작했던 순수한 마음과 관계들이 무너져 상업화가 될까봐 조금 걱정이다. 지금처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서로 마을 소식도 전하고, 재미지게 살면 더없이 좋겠다는 게 작은 바람이다.

▲ 왼쪽: 위순심(71세, 용산면) “구경 나왔다가 구기자 묘목 샀어. 기념으로 사진도 찍히고 좋네잉!”
오른쪽: 김덕심(70세, 용산면) “왔응께 하나 샀어. 그릇이야 집에 많지만도 숨 쉬는 그릇이라고 해서 사봤어. 어찐가? 좋아 뵈제?”

마실장은 2013년 4월에 시작하여 1년을 맞이하고 있다. 용산장날인 1일과 6일 중에서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겹치는 날을 마실장날로 정한다. 다음 달 장날은 그때그때 장에 모인 사람들과 의논해서 정한다. 사고파는 것에 있어 원칙은 없다. 서로 물품이 겹치면 스스로 가격을 조정해 나간다. 여느 장이 그렇듯.

▲ 우리밀 누룩으로 직접 제조한 ‘가양주’. “장에 왔응께 한 잔씩 해야제!”
▲ 가는 날이 장날이라 구경 온 김에 ‘득템’한다.
▲ 직접 만든 빵, 쨈, 차를 즉석에서 시식할 수 있다.
▲ 구경도 하고, 체험도 하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 유기농으로 재배한 고구마는 통으로도 팔고, 튀김으로도 판다. 어린이는 할인!
 

마실장은 횃불이 되었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마실장을 시작으로 벌교에서는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소화다리에서 장이 선다. 이어서 해남, 강진도 장터가 열리기 시작했고, 고흥지역에서도 준비 중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장’이란 지역에서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문화로 여긴다. 그 생각들은 소소한 ‘전라남도 장터벨트’라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장은 아니다. 서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다. 새롭게 변모해 가는 작은 장터가 시시콜콜한 사람이야기들로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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