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자·의·삶·의·현·장 - 기적의 도서관 동화구연지도사 윤선주 씨

대한민국 제1호 ‘순천 기적의 도서관’이 10년을 넘겼다. 2003년 MBC 예능프로그램이었던 ‘느낌표’가 만들어 낸 전국 최초의 기적의 도서관은 순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책 읽는 문화의 확산은 물론이고 부모와 아이가 함께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 익숙해졌고 도서관이 놀이터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게 했다.

기적의 도서관 운동을 시작하기 전 우리나라에는 어린이 도서관이 단 한 곳뿐이었다. 어린이 도서관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기적의 도서관은 설계에서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틀을 잡아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도서관운영위원회의 노력과 많은 자원활동가들의 땀이 없었다면 오늘의 기적의 도서관은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개봉한 ‘말하는 건축가’의 주인공이자 순천 기적의 도서관 설계자인 정기용 건축가는 기적의 도서관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대한민국의 위대한 아줌마들’의 도움을 들었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도 열혈 아줌마들의 땀이 곳곳에 배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곳에는 10년 세월의 땀방울을 심어온 대한민국 열혈 아줌마 윤선주(42세)씨가 있다.

“도서관이 설립되고 어떻게 지어졌는지 궁금해서 아이들과 구경을 갔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바닥이 방처럼 돼 있어서 아무 곳이나 앉아서 책을 볼 수 있고, 누워서도 볼 수 있고. 그때는 큰아들이 초등학교 다니고 둘째가 어린이집을 다녀서 오전에 여유가 있었어요. 책을 평소에 좋아해서 어차피 아이들 책 빌리러 자주 오는데 봉사하면 좋겠다 싶었죠. 사실 의미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했지만 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겠다싶은 얄팍한 생각도 있었죠.”

초창기에는 전국 최초 1호관이라는 유명세로 도서관을 구경 온 사람이 많았다. 도서관 입구에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려야할 정도로 사람이 많아 신발주머니를 나눠주고 인원통제를 해야만 했다. 밀려드는 도서관 이용자들 줄을 세우고, 안내하고, 흐트러진 책들을 정리해서 제자리에 꽂아야 하는 등 이 모든 일들이 자원활동가들의 역할이었다.

▲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공부도 한다. 아이도 선생님도 모두 즐겁다.
“어린이 도서관이 처음이라 너무 신기하고 좋은 거예요. 책정리하면서 어린이 책이 그렇게 많은지도 처음 알게 됐어요. 책도 많이 알게 되고, 작가들도 알게 되고 재밌었어요.”

하루 3시간씩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 희망하는 요일에 봉사활동을 하는데 견학팀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타 지역에 기적의 도서관이 생기면 편지를 써서 보내는 일도 했다. 윤선주씨를 비롯해 처음부터 함께 한 도서관 자원활동가들은 새 집을 지어 꾸며가듯 모든 일이 내 집 같은 애정이 많다.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책에 부모 직업을 쓰는 것이 있었어요. 저는 결혼 후 전업주부로만 살았거든요. 아빠는 직업을 쓰지만 엄마는 ‘없다’ 또는 ‘주부’라고 쓰는데 아들이 엄마 직업란에 ‘우리 엄마는 기적의 도서관 자원활동가’라고 써놓은 거예요. 그걸 우연히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평소에 도서관 이야기를 많이 했더니 그 이야기가 아이에게는 좋았나 봐요. 내가 느끼는 자부심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는데 아이에게 인정받고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너무 뿌듯하고 기뻤어요.”

경계를 넘어선 책읽기
‘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본부’가 함께 만들어 낸 기적의 도서관은 다른 도서관과는 달리 시민이 함께 구성된 도서관운영위원회가 따로 운영·관리한다. 도서관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었던 건 도서관운영위원회와 전 허순영 관장의 다양한 시도들이 큰 몫을 했다. 아이들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과 자원활동가를 전문가로 양성하는 깊이 있는 교육을 진행하면서 도서관에 대한 생각의 틀을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 허순영 관장님은 자원활동가를 키워서 지역의 독서활동가로 양성되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자원활동가를 대상으로 도서관학교를 운영했고, 아주 탄탄한 교육들로 진행됐어요. 교육을 수료한 사람에게는 도서관 준사서증이 나왔는데 그때 교육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이후에 마을도서관을 운영하게 되고, 강사나 학교도서관에 계약직 사서로 갔어요.”

도서관 자원활동은 윤선주씨가 동화구연지도사로 거듭난 계기였다. 동화구연이라는 일이 학교에서 전문교육을 받지 않았던 터라 처음 수업이 주어졌을 때 자신감도 없었고 두려움이 컸다. 주저하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 힘이 되었던 사람이 전 허순영 관장이었다.

“그때 관장님이 우리나라에는 어린이 그림책 전문가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며 배워가면서 하면 된다고 용기를 주셨어요. 충분히 교육을 받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해봐라, 모르는 것 있으면 도와 줄 테니 한 번 해보라고 기회를 만들어 주시더라구요.”

그렇게 어리둥절 도서관에서 동화구연 수업이 시작되었다. 생각만큼 처음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 수준에 맞는 수업을 짜야하고 진행 방법을 고민하는 일이 힘들었다. 하지만 신이 났다. 재미가 절로 났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고 관련된 놀이를 하고, 함께 뒹굴기도 하고 조금씩 음식을 챙겨와 나눠 먹기도 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일이 즐거워졌다. 행복했다.

기적의 도서관이 10년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두 아이는 훌쩍 자라 이제 곧 수험생이 된다. 집도 이사를 해서 도서관엘 가려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 타야한다. 그래서 그만 둘까 생각도 했다. 집과 가까운 도서관도 가봤다. 그런데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기적의 도서관이 너무 익숙해져서 다른 도서관이 낯설었다. 시작부터 함께 했던 곳, 가족적인 분위기, 알뜰살뜰 내 손때가 묻어 있는 곳이라 그만 둘 수가 없다.

“책이나 영화 같은 것들이 뚜렷한 경계를 두지 않으면 좋겠어요. 경계를 뚜렷이 구분해 놓으면 그 경계 안에서만 생각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경계가 느슨해 있으면 넘어가 볼 수도 있고, 그러면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책과 미디어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어요.”

▲ 윤선주씨가 진행하는 기적의 도서관 북스타트 수업.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내용과 관련한 놀이를 한다. 만들기, 게임, 노래, 음식만들기 등 책과 함께 논다.
아이들 이야기만 하면 행복해지는 윤선주씨는 책 읽어주는 수업이 많았으면 좋겠단다. 책과 관련한 프로그램이 많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기적의 도서관이 만들어 낸 책읽기 문화가 윤선주씨가 바라는 다양한 모습들로 아이들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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