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광장신문
> 오피니언 > 광장시론
1948년 10월의 희망을 다시 노래하다
정지아 작가  |  7210900@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200호] 승인 2019.07.04  10:06:0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정지아 『빨치산의 딸』의 작가 

1948년 10월 19일 오전 7시, 육군본부로부터 제14연대에 출항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제주로 가서 4.3사건을 진압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부대원들은 선량한 제주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제주도 출동에 반대했고, 지창수를 신임 연대장으로 추대하여 여수로 진격했습니다. 이것이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고,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복되지 않을 상처를 남긴, 여순항쟁의 발발동기입니다. 거기, 이데올로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동포들이여! 조선 인민의 아들인 우리는 우리 형제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고 제주도 출병을 거부한다. 우리는 조선 인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싸우는 인민의 진정한 군대가 되려고 봉기했다.

 

제주도출동거부병사위원회가 애국시민에게 호소한 선언문에도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14연대가 명령에 불복하여 항쟁을 일으킨 것은 오직 동족을 죽일 수 없다는 인간적 양심의 발로였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여순항쟁의 진실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순항쟁이 대한민국 정부에 반대한 군인반란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얼마 전 의열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 선생의 서훈논란이 있었습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혁혁한 독립운동 공적에도 불구하고 약산이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정부는 훈장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약산 선생이 살아 있었다면 대한민국 정부가 훈장을 준다고 해도 거절했을 것이라 일갈했습니다. 친일세력이 주도해온 대한민국이 약산에게 훈장 줄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약산을 북으로 내몬 것은 바로 친일, 친미세력이었습니다. 그가 남한에 남아있었다면 이승만 정권에 동조하지 않은 김구나 여운형이 암살당했듯 암살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친일, 친미정권을 세워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을 도모하려던 세력이, 자신들에 의해 북으로 쫓겨 간 약산에게 훈장을 수여하네, 마네, 거론하는 것마저 우스꽝스럽기는 합니다.

 

약산이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한 빨갱이이므로 훈장을 줄 수 없다는 대한민국, 국군이 정부에 반대한 빨갱이들의 반란이므로 여순항쟁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은 선량한 제주도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하고, 나라 지키는 군인들에게 선량한 제주도민을 학살하러 출동하라고 명령했던 그 대한민국과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친일파가 주축이 된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이 곧 대한민국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와 이득을 위해 국가가 곧 자신들인 듯 호도해온, 일부 기득권 세력일 뿐입니다. 그들은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자신들의 이익에 해가 되는 자는 모두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사회주의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지 벌써 30년은 지났는데도 말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다른 사상을 인정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하지만 여순항쟁의 진실을 언급할 때 굳이 사상을 들먹일 필요도 없습니다. 여순항쟁은 앞서 말했듯 동족상잔을 거부한 가장 인간적인 행위였을 뿐이고, 그 과정에서 사상도 뭣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전남 동부6군의 숱한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사상과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빨갱이로 몰려 얼마나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했는지, 지금 와서 필요한 것은 오직 진실을 밝히는 것뿐입니다. 진실을 밝힌다고 해도 이미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그 진실이 죽은 자에게 어떤 위안이 되겠습니까? 진실은 살아남은 자에게 유용한 것입니다. 진실을 밝히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은 우리가 제대로 앞을 보고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반성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입니다.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반성하지 않는 사회 또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우리가 인간인 이유는 실수를 하고, 실수임을 인정하고, 반성하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하고, 실수임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변명을 일삼은 인간에게는, 사회에는, 어떠한 희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고달픈 세상이라도 희망이 있는 한 인간은 살 수 있습니다. 14연대가 대한민국이 반란이라 일컫는 항쟁을 일으킨 이유는 아직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최소한 동족을 서로 죽이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희망이 있을까요?


대한민국 정부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 거기서부터 여수 14연대가 꿈꾸었던 희망을 우리도 다시 꿈꿀 수 있지 않을까요?


정지아
『빨치산의 딸』의 작가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7956 전남 순천시 중앙3길 3, 3층(장천동)  |  대표전화 : 061)721-0900  |  팩스 : 061)721-1141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남아 00196(주간)  |  발행일자 : 2013년 4월 5일  |   발행인 : 변황우  |  편집위원장 : 서은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정우
Copyright © 2013 순천광장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gora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