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관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장

[특별기고] 4월 29일 여순항쟁 재심재판 방청기

 

역사의 가르침은 단순하다. ‘비극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여순항쟁의 가르침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 여순항쟁 당시 진압군이 주민들을 학교에 집결시키고 있는 장면

 

여순항쟁은 제주도민에 대한 토벌 명령을 거부한 국군 14연대의 봉기에 지역민이 합세하면서 시작되었다. 국가는 법에도 없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토벌군을 파견해 진압에 성공했다. 이후 “남녀아동까지라도 일일이 조사해서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라”는 이승만의 지시에 무고한 민간인 1만여 명이 공권력의 이름으로 학살당했다. ‘남로당의 개입’이나 ‘좌우익의 대립으로 인한 무고한 양민의 죽음’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사실도 아니거니와 학살을 지시한 자들을 암막 뒤로 숨기는 역할을 한다. 마치 5?18 광주항쟁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과 같다. 여순항쟁 학살 책임자인 이승만은 자신 열악한 지지 기반을 만회하기 위해 여수·순천을 학살지로 선택해 가짜 언론과 공포심을 이용해 반대파를 숙청해 나갔다. 즉 정권 기반을 강화·유지하기 위해 공권력을 악용한 것이다.  

 

여순항쟁 이후 71년. 여전히 국가폭력의 상처들은 아물지 않고 있다. 여순항쟁을 포함해 4?19혁명, 한일회담 반대시위, 부마민주항쟁, 5·18 민중항쟁 등 독재정권은 모두 10차례나 계엄을 선포했고 그럴 때 마다 민중들은 피를 흘렸다. 어느 것 하나 헌법에 명시된 전시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는 아니었다. 

 

지금이라고 다르랴. 세월호 참사 보름 뒤, 실종자 수색 작업이 한창이던 때 기무사령부는 계엄을 검토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그들은 계엄령으로 응답하려 했다는 것이다. 2017년 촛불혁명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4월 29일 71년 만에 열린 여순항쟁 재심 재판에서 김정아 판사는 “여순사건은 무고한 민간인을 무법적으로 집단 학살한 사건이라는 의견을 존중하는 전제하에 재판을 할 것이며,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이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역사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유족들과 이 지역민들에게는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아직도 각자의 기억 속에, 이곳저곳의 건물, 운동장, 산천에 아로새겨져 있는 생생한 현재의 고통임을 재판부는 절절히 느끼고 있다”
고 재심에 임하는 재판부의 입장을 밝혔다.

 

▲ 희생된 남동생의 시신 앞에서 누이의 오열

 

재판부의 의견을 존중하며 이번 재심을 통해 국가의 사과와 보상으로 수십년간 숨죽이며 살던 분들의 아픔이 치유되고 국가폭력으로 인한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기대한다. 그리고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공포심에 그날 서로에게 손가락 총을 겨누었던 우리도 결국에는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에 스러져간 영혼은 그 누가 달랠 수 있겠는가?” - 대법원 <여순사건 민간인희생자 재심결정 판결문> 인용

임승관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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