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미안해. 또 4월을 앓았어. 이 땅에 살던 이들이 까닭도 모르고 스러져간 주검 앓이. 4·3, 4·19, 4·9, 4·16으로 새겨지는 날들이 4월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 4월뿐이겠어? 5·18, 6·25…… 아픔은 달을 가리지 않아. 
  스러져 간 이들은 모두 어떤 이의 몸을 빌려 이 누리에 온 아이였어. 어버이거나, 어버이가 됐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지. 다 이 땅에 사는 아비들이 저지른 짓이라는 데서 더욱 가슴을 찧을 수밖에 없어. ‘나라 살림’을 해달라고 힘을 넘겨받은 이들이 그 힘으로 힘을 넘겨준 나라사람들을 마구 억누르고 죽음으로 내몰았던 일들이지. 살림은 죽임에 맞선 말인데 살림살이하라고 넘겨준 힘을 죽임으로 갚다니…. 
  지난 4월 7일 ‘10대는 이렇게 말한다! 한반도 평화, 평화살림놀이마당’을 열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스러져간 이들에게 묵념 올리기였어. 연달아 최봉희 시인이 펴낸 시집 『5·18엄마가 4·16아들에게』에서 길어 올린 ‘아빠가 미안해’란 시를 읊었어. 
  “발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밖에 없어 / 아빠는 너무 미안해 …… 아빠가 많은 시간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해 …… 배 안에서 전화한 걸 / 식당 일 하느라 핸드폰 꺼 놓고 받지 못해 미안해 …… 널 보내고도 밥 먹고 / 숨 쉬는 게 너무 미안해……”
  아주 오래도록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살았어. 2014년 4월 16일,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에 따라 살려주기를 기다리다가 죽어가는 너희를 두 눈 벌겋게 뜨고 보내고 나서야 알았지. 우리가 그랬다는 걸. 이 땅에서 빚어진 모든 죽임이, 살림이 뭔지 참답게 헤아려본 적이 없는 이 땅에 사는 아빠들이, 우리가 저지른 짓거리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어. 
  해방이 뭔지 독립이 뭔지 자유가 뭔지도 제대로 헤아려본 적이 없는 우리가 아이를 비롯한 나라사람들 목숨을 수도 없이 빼앗고야 말았어. 해방이 억눌림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독립은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따로 서는 일로, ‘우리끼리 어깨동무하며 스스로 살아내야 하는’ 건 줄 몰랐어. 자유가 ‘스스로 말미암아 서로 살리기’인 줄도 알지 못했어. 남이 심어 놓은 틀 안에서 생각하고 움직이면서도 제 생각대로 사는 줄 알고 있었던 거야. 
  철이 없어서 그랬어. 스러진 너희는 말할 것도 없이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영원히 아물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구나. 이제야 엎드려 빌어. 이 아빠를 용서하지 마. 별이 된 네게 멀쩡한 낯빛을 하고 어찌 용서를 빌 수 있겠어. 늦었더라도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네 아우들이라도 제대로 아우르려고 해. 그나마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네가 도와줘.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구석이 보이면 사정없이 꾸짖어.

변택주 작가

 
  • * 변택주 작가 프로필 / ‘평화는 살림’이란 말머리를 들고 서로 살리는 말결을 나누며 다니는 변택주는 하도 느려 터져서 ‘늘보’라고 부릅니다. 모래 틈에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조그만 꼬마평화도서관도 열러 다니고 있는데, 그동안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 복도와 연립현관, 반찬가게와 카센터, 교회와 절, 아픔이 깃든 터 곳곳에 둥지 틀었습니다. ‘으라차차 영세중립코리아 바라지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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