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막차를 타고 내린 구례에 비가 내린다. 얄궂게 스쳐가는 비다. 가는 빗살이지만 한기가 느껴진다. 그냥 걷기로 하자. 이 깊은 밤 서시교 난간을 비에 스며들 듯이 타고 넘어가 보자. 나는 자전거를 타러 이곳에 왔다. 자전거로 지리산의 봉긋한 산자락을 엄마의 젖가슴을 헤집는 아이처럼 맴맴 할 것이다. 그리고 햇살에 반짝이는 섬진강에 제 낯바닥을 비추는 소녀처럼 찰랑찰랑 페달을 밟을 것이다. 
  3년 전 내가 만난 자전거는 구례에 사는 지인의 허름한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녹이 슬고 있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자전거다. 기어 21단의 삼천리 자전거. 고물이다. 멋쟁이 라이너들이 법석거리는 섬진강에서 지 스스로 제 낯짝을 가릴 만하다. 풀이 죽어있는 녀석에게 다가가 상냥하게 말을 건넨다. “시방부터 내가 니 주인이여”
  그동안 나와 나의 나타샤는 나와 아니 간 곳이 없다. 물론 섬진강 자전거도로 주변뿐이지만. 막차로 와서 막차로 떠나는 구례. 짧은 해후이지만 긴 동행이다. 온종일 달리고 달린다. 그날 대숲을 지날 때 만난 여름 소나기를 잊지 못한다. 빗줄기를 튕겨내며 달리면 비는 내 몸을 때린다. 나는 그때 대나무가 되어 한 뼘이 자라는 도를 깨달은 것 같다. 여전히 그 길에는 낙엽이 지고, 잔설이 치고, 매화가 피고, 벚꽃이 지고, 여우비가 무지개가 피어내고, 또 그렇게 낙엽이 지면 한 해가 바뀐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는 지금 구례에 살고 있다. 외살이가 벌써 1년이 되어 간다. 올만한 때가 되니 온 것 같다. 30년 동안 해오던 일을 접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꿈꾸지 않는다. 매양 살아왔던 것처럼 살아갈 것이다. 우리네 생활에는 기적이란 없다. 간혹 새 옷을 갈아입을 때 느끼는 산뜻함과 같은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진부해질 것이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매일 조금씩 아름답게 낡아가고 싶다. 오늘도 나와 나의 나타샤는 달리는 중이다. 
  구례에 살면서 일주일에 한 번 순천에 간다. 일 아닌 일 때문에 간다. 고백하지만 지난 가을 순천을 다니면서 혼자서 좀 울었다. 순천에서 ‘여순사건 70주년’행사를 참관하면서 내 무지함에 놀랐다. 만권의 책을 읽었다고 자부하는 내게 ‘여순항쟁’은 충격이었다. 내게 여순은 그냥 사건이었을 뿐이다. 다시 자료를 찾고, 그때 일어난 일을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 아름다운 섬진강 자전거길이 그토록 참혹한 역사를 품고 있었음을 몰랐다. 
  무심히 달렸던 서시교 천변이 무고하게 학살당한 사람들의 암매장 장소이었음을. 옛 나루터에선 본 섬진강의 빨간 노을이 진짜 핏빛이었음을. 산동의 산수유 꽃이 매화와 다투며 왜 그리 진하게 노란색을 뿜어냈는지를 몰랐다. 그리하여 섬진강의 벚꽃은 우수수 눈물처럼 떨어지고, 떨어진 흰 꽃잎은 강물 위를 따라 흘러갔다. 누구의 옷자락인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안다. 자기가 간만큼 반드시 되돌아 와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힘들어도 자전거를 버리고 혼자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마찬가지다. 무고하게 흘린 피는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에게 반드시 되돌아 갈 것이다. 나는 내일 그것을 믿고 또다시 섬진강을 달릴 것이다. ‘꽃잎’(김추자, 1971)을 부르면서. 
“근데 너 또 울거지.”

강용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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