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예남 할머니 생전 모습

  지난 3월 2일 전남 유일한 생존자였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곽예남 할머니가 94세 나이로 운명하셨다. 지역 평화나비와 단체들은 담양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발인시 ‘노제’로 나마 할머니의 원혼을 위로하였다.
 곽예남 할머니는 1925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1944년 열아홉 살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로 중국으로 끌려가 1년 반 동안 성노예로 모진 고초를 겪으셨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패전 후에 중국에서 버려져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되었다. 할머니는 60년 동안 중국에서 힘겨운 삶을 살다가, 2004년 한국정신대연구소와 MBC ‘느낌표’ 등을 통해 사연이 알려진 뒤 한국을 방문, 국적을 회복한 후 고향에 돌아 올 수 있었다. 할머니는 당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도 "예남아 집에가자"라는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보따리부터 챙겨 들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연은 비단 곽예남 할머니만이 아니다. 일본군에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 패전 후 갑자기 이국땅에 내팽개쳐진 ‘위안부’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중국이나 남양 군도의 어느 정글에서 아무도 모르게 한 많은 생을 마친 곽예남 할머니와 같은 사람도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위안부’의 참혹한 실상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이 없었다면 영원히 묻혀 버릴 역사의 아픔이었다. 할머니들은 그동안 일본과 세계의 양심을 향해 전쟁의 끔찍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는 평화의 ‘나비’였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세상을 바꾸는 태풍이 되어, 짓밟힌 여성의 인권을 일으켜 세웠다. 
정부에 등록된 340명 중, 이제 22명만이 생존해 계신다.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지 못한 채 돌아가신 할머니들에게 후세대가 해야 할 일은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회복, 평화실현을 위해 할머니들이 그랬듯이 이제 우리가 그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 곽예남 할머니 묘소

  곽예남 할머니는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장된다. 할머니 옆에는 같은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복동 할머니가 묻힌 곳이다. 이제 영면에 드셨지만 두 분은 다시 이웃사촌이 되셨다. 이승에서 못 다한 이야기꽃을 피우시길 기원 드린다. 그리고 곽예남 할머니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마지막 이야기를 전할까 한다. “후손이여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세요”(곽예남 할머니 묘비명) 할머니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강용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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