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천 문화공간 산책 ]

     ▲순천 동천 벚꽃길

매년 봄 우리 고장에서 활짝 핀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곳 중 하나가 동천이다. 당연히 상춘객들로 북적인다. 140여 년 전의 동천은 어떠했을까? 1872년 순천부읍성 지도를 보면 읍성 동문 밖 동천은 호수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1790년 환선정 중수 기문을 쓴 윤광안(尹光顏)은 “고리모양의 지당(池塘)”이라 하였다. 또 1880년 1월에서 1881년 9월까지 순천부사를 역임한 김윤식(金允植,1835-1922)은 배도 띄울 수 있고 헤엄도 치며 양반을 비롯한 남녀노소가 노니는 곳이라 하였다. 또 소서호(小西湖)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는 중국 절강성 항주의 서호(西湖)에 견준 것이다.
그렇다면 읍성 동문 밖 동천에 배를 띄운 것, 즉 뱃놀이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1544년 읍성 동문 밖 동천 가에 환선정(喚仙亭)을 완성한 순천부사 심통원(沈通源)은 당시 전라도관찰사 송인수(宋麟壽)와 옥과현감(玉果縣監) 김인후(金麟厚)를 초빙해 주연을 베풀었다. 그때 송인수가 「제환선정(題喚仙亭)」 첫째 시에서 “붉은 화장 푸른 눈썹의 미인을 배에 태우니, 새로 정사 펴는 부사의 어짊을 알겠네. 영녀는 노래부채 아래서 퉁소를 불었고, 풍이는 춤사위 앞에서 북을 쳤었지. 강물고기 물결 일으켜 상아돛배 가고, 모래톱 놀란 물새 떼 비단닻줄 끄네. 삼신산이 어딘지 모른다 말하지 말게, 환선정 위에 신선들 모였네.”라고 하였다. 곱게 화장한 기녀(妓女)와 악공(樂工)을 대동하여 동천에서 뱃놀이하고 환선정에서 주연을 즐기는 상황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동천 뱃놀이의 시작이다.

한 줄기 맑은 시내에 놀잇배 띄우고   

   ▲ 신윤복의 주유청강(舟遊淸江)

현인들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네    
청산은 난간 밖에 그림자 드리우고    
백조는 놀잇배 닻줄 앞에서 빙빙나네
읊는 곁에서 기이한 흥치를 주체하지 못해
취중에 젊은 기녀에게 끌린들 어떠리
봉래산 방장산은 다 허언일 뿐이고    
내가 지상에서 노니는 신선이로다       

一帶淸川泛畫船(일대청천범화선)    
座中談笑會群賢(좌중담소회군현)
靑山影落朱欄外(청산영락주난외)    
白鳥飛廻錦纜前(백조비회금람전)

不耐吟邊奇興發(불내음변기흥발)    
何妨醉裏小娥牽(하방취리소아견)
蓬萊方丈皆虛耳(봉래방장개허이)    
我是遨遊地上仙(아시오유지상선)

  ▲ 중국 절강성 항주 서호.

1610년 윤3월부터 1611년 8월까지 순천부사를 지낸 유영순(柳永詢,1552-1630)의 「환선정차운」이란 시이다. 난봉산・봉화산・인제산 등이 비치는 맑은 동천에 놀잇배를 띄워놓고 지인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담소하고 시를 읊조린다. 그러다 한껏 취기가 오르면 거리낌 없이 아리따운 기녀와 노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어디 이 뿐이랴? 이수광(李睟光)은 「제화선(題畵船)」 6번째 시에서 “사람들 기녀를 사이해 이야기하고, 배는 버들 그림자 따라 이동하네. 유흥에 빠져 저무는 줄도 모르더니, 다시 달 밝을 때를 기다리네.[人隔桃花語, 舟從柳影移. 留連不覺暝, 更待月明時.]”라고 하였다. 주색(酒色)의 유흥에 빠져서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오히려 달밤까지 유흥을 지속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말초적 쾌락을 만끽하느라 그칠 줄 모르는 질탕한 유흥의 뱃놀이다. 기녀와 악공과 술을 대동한 뱃놀이는 신윤복의 풍속화 주유청강(舟遊淸江)을 보는 듯하다.  
이렇듯 동천이 뱃놀이의 장소였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천의 뱃놀이가 모두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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