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인의 『무자년 가을 사흘』

▲ 박찬모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 HK교수)

-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지난 2014년 여름, 한국을 방문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다. 정치적 중립을 위해 세월호 참사 유족들로부터 받은 노란 리본을 떼자는 조언(?)에 대한 단호한 거부의사였다. 그렇다. 인간의 고통 앞에는 정치도, 중립도, 나아가 종교도 없다. 인간의 고통과 그 고통 앞의 인간이 존재할 따름이다. 정치와 종교, 좌-우와 중립은 인간의 태도와 위치를 지시하는 것일 뿐이기에 고통과 직면해야 하는 인간 그 자체까지 말소할 수는 없다. 그리고 여기에 ‘여순사건’이라는 고통과 마주한 인간 서정인이 있다.

1936년 순천에서 태어난 서정인은 소학교 6학년 때 여순사건을 경험하였다. 80년대에 그는 어머니 품처럼 너른 지리산자락을 두루 오르내리며 산행의 고통으로 ‘지난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의 고통을 중화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94년 가을 「무자년 가을 사흘」을 발표하였다. 「후송」(1962)으로 등단한 이후 30여 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난 후였다.

「무자년 가을 사흘」은 진압군인에게 순천 북소학교로 강제연행되어 총살 현장을 목격하고, 저녁 무렵에야 어리다고 방면되어 귀가하는 소학교 6학년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년의 시선에서 양민학살과 국가폭력의 참상에 곧장 육박해 들어가는 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성급하게 『순이삼촌』류의 증언과 기억, 재현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 작품은 우연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게 우리를 덮친 그 ‘사건’의 전모를 규명하기보다 그 사건의 참상을 ‘가슴’으로 겪었던 소년에 대해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어리다고 풀려난 것은 날이 어두워진 다음이었다. (…) 웃논배미 아랫논배미가 그의 키만한 높이로 턱이 졌고, 거기에 벗은 채 총 맞은 피투성이 송장들이 겹겹이 나자빠져 있었다. 그는 무섭지 않았다. 아마 그는 무엇에 너무 가까이 갔었다.

그 소년은 운동장에서 진압군인들이 기관단총으로 학생을 총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가을걷이가 끝났을 빈 논바닥에 뒹구는 ‘피투성이 송장들’을 보고도 무서움을 모른다. 작가는 그가 “무엇에 너무 가까이 갔었”기 때문이라고 부연한다. 그 ‘무엇’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에 대해 누군가는 그 ‘무엇’을 죽음이라고 명명할 지도 모르겠다. 죽음에 너무 근접해 있었기에 역설적으로 죽음의 공포가 소진되어 버린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만일 무자년 그 가을, 순천 북소학교 운동장으로 되돌아가 얼뜬 짐승마냥 사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그 소년을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그에게 무슨 말을 전할 수 있을까. 과연 그에게 죽음에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를 권유할 수 있을까. 혹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있다면 그 소년이 거세게 도리질을 치지 않게끔 조심스레 손바닥을 그러모아 그의 눈을 가려주는 정도가 아닐까. 지리산에서 소년의 울음으로 울면서 ‘무자년의 소년’에게 건넬 말을 쓰라림 속에서 매만졌을 작가의 고통이 우리에게 전이되어 오는 지점이 여기이다. 우리 또한 그렇게 ‘가슴’으로 소년을 만나게 된다.

 이렇듯 「무자년 가을 사흘」은 여순사건의 결락된 세부를 보완하여 그 총체적 면모를 완성시키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소년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가 이해가능한 의미 체계 속에 쉽사리 위치지울 수 없는 여순사건의 폭력성과 그 고통을 대면하게 해줄 따름이다. 우리가 거듭 소년을 만나고 재차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인간 서정인은 작가로서 이렇게 덧붙이는 듯하다.

- 인간의 고통앞에 회피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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