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여순사건
어린 시절, “나서지 마라, 모난 돌에 정 맞는다. 똑똑하게 보여서는 미움 받는다. 저 딸은 객지로 보내야 한다.”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며 성장했다. 그 말에 대한 숨은 뜻을 절실하게 느낀다.
‘생각이 다르면 불순하고, 자기편이 아니면  적이다’라는 여전히 실체를 알 수 없는 손가락 총이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부모님은 자주 여순사건 때 겪은 일을 얘기하며 몸서리를 치곤 하셨다. 나와 내 부모만이 아니라 순천 토박이들이 똑같이 겪은 일일 것이다. 비극의 역사를 겪은 순천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
 
언론과 지역민, 정치권이 함께 풀어가는 여순10·19
올해는 여순사건 70주년, ‘여순10·19특별법’ 제정에 지역에서 한 목소리의 공감이 일어났다. 정치권이 나서고 있다. 전남 동부지역 시·군 자치단체와 의회, 전라남도와 전라남도의회, 국회의원까지 ‘여순10·19사건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에 온 열정을 쏟고 있다.

제20대 국회에서 반드시 특별법 제정을 해내야 한다는 각오들이 뜨겁다. 언론은 10월 한 달 간 여순사건 특집기획을 방영하고 집중 뉴스로 여순사건을 조명하는 일에 앞장섰다.

여순10·19특별법 제정 범국민연대 활동과 청와대 국민청원
2000년 초부터 실태조사와 자료집 발간, 증언채록, 여순사건 관련 지역 표지석 설치, 위령탑 설립, 유족회 지원 등 여순사건 관련 활동을 해왔던 순천시민연대와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활동가들이 여순사건 7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법 제정에 앞장섰다. 그리고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전남 동부지역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범국민연대를 발족하였다.

먼저 명칭에 대한 고민이 컸다. 몇 번의 토론과 논의를 통해 항쟁으로 조명해가기로 하고 전국적으로 연대해가는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로 결정하였다. 준비 기간을 거쳐 9월 4일, 특별법제정 촉구 서명 순천역 캠프를 열고, 46일간 20여 개 단체가 돌아가며 캠프를 지켰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전을 펼치며 여순사건의 개요와 특별법제정의 필요성을 알렸다. 정치권의 역할을 촉구하고, 범국민 상생의 띠잇기로 청소년부터 대학생, 시민들의 힘을 결집시켰다.

여순사건 발발일인 10월 19일부터 11월 18일까지 1개월간 청와대 국민 청원 20만명 참여 운동을 시작하였다. 특별법 제정에 대통령과 정부의 관심과 역할을 요구하기 위한 일이다.
여순사건을 알고 있는 세대는 인터넷 참여가 쉽지 않고, 젊은 세대는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기에 20만 명 청원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순10·19사건특별법제정의 필요성을 절실히 알리고 참여시킨다면 가능한 일이다.

여순10·19,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여는 출발점
올해는 70주년 행사들이 정신없을 정도로 풍족하게 개최되었다. 침묵하지 않고 각계 각층에서 여순사건을 조명하고 표현하는 것은 참 고무적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70년이 지나도록 대한민국의 역사임에도 우리 지역만의 역사로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여순10·19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여는 출발점으로 미래형이다. 비극의 역사를 지역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기에 신발 끈을 꽉 조이며 힘찬 하루를 시작한다.

박소정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
 

- 여순10.19특별법 청와대 청원 중 -
  여순10·19특별법이 제정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래 청와대 서명 링크를 눌러주세요】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411305?navigation=pet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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