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계수 조합원

추석을 눈앞에 둔 일요일 아침이다. 장마철에 비다운 비 한 번 제대로 뿌리지 못한 게 민망했던지 가을로 접어들면서 흐리고 비오는 날이 많던 하늘이 오랜만에 맑고 깨끗하다. 저 아래 쪽 주암호 상류 지역은 가을에 늘 그랬듯 순백의 짙은 안개에 잠겨 있고, 아침 햇살을 받아 곳곳에서 하늘거리며 피어올라 상공으로 스러지고 있다. 객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휴일을 틈타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하는 예초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하다. 벌초가 마무리되는 추석 직전이면 봄 여름 동안 풀나무에 묻혀있던 묘지들이 모두 말끔한 모습으로 드러나 산천이 마치 이발하고 면도라도 한 듯 말쑥해진다. 집 앞 언덕에 있는 밭에서 뒤늦은 무씨를 심다가 눈에 들어온 풍경에 농사짓고 사는 삶이 모처럼 기껍게 느껴진다.

동네 할머니들은 8월 하순 처서 무렵에 무씨를 넣어 지금은 솎아내 김치를 담가도 될 만큼 자랐다. 집에서 김장용으로 쓸 요량이면 두 세평 넓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비가 긋는 사이를 틈타 거름 내고 일궈 파종할 수 있지만, 대량으로 재배하는 경우에는 비가 잦은 날씨에 일이 더딜 수밖에 없다. 거름 내고 땅을 가는 데 쓰는 기계가 들어갈 만큼 땅이 말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집의 가을 농사가 이렇게 늦어진 데에는 날씨 탓도 있고, 벼논 피사리에 시간을 빼앗긴 것도 있지만 여름 들머리에 아내가 몸을 다친 이후 아내 일을 내가 대신 하는 바람에 들일이 뒤로 밀린 때문이기도 하다.

아내는 들일을 거의 하지 못한다. 계란을 걷어서 손질하고 포장하고 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농사꾼으로서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장으로 동네일도 봐야 하고 불편한 친정 부모님도 돌봐야 한다. 겉은 멀쩡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힘쓰는 일을 하지 못할 형편이기도 하다. 속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들일을 혼자서 하는 나를 보고 안쓰럽게 여긴다. ‘혼자서 일 허니라 고생허네’ 하는 인사말 속에는 일을 함께 하지 않는 한 사람에 대한 타박이 들어 있다. 일일이 해명할 수도 없는 일이라 아내로서는 억울할 노릇이다. 서울서 살다 왔다는 것에 더해 농사꾼 아낙으로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도회풍의 외모도 사람들의 이런 인식에 한 몫 했을 것이다.

아내는 감자를 수확할 무렵 고랑에 허리춤까지 자라난 풀을 보고 참지 못해 그걸 뽑으려다 힘을 잘못 쓰는 바람에 허리를 다치게 되었다. 아내는 씨를 파종하거나 모종을 옮길 때, 또는 수확할 때나 김매기가 많이 밀려 있을 때 가끔 밭에 들어간다. 성격이 깔끔해서 일이 정돈되지 않아 보이면 바로 잔소리가 시작되어 신경이 많이 쓰이고, 내게 핀잔이 반복되면 들판에서 다투기도 한다. 일이 벅차다 싶으면 도와줄 만한 사람을 쉽게 불러오고 사람들에게 일을 적절히 배분하고 지시해서 손을 놀리는 일이 없다. 농산물이 창고에서 놀고 있으면 소비처를 물색해서 팔아치우는 것도 내게는 부족한 능력이다. 나는 앞뒤 재는 일 없이 그저 우직하게 일만 하는 편이라 아내의 이런 역할이 없었다면 우리 집 농사는 이만큼이라도 굴러가지 못했을 것이다. 큰 회사나 조직체의 관리 파트에서 일하면 딱 좋을 사람이다. 아랫사람은 좀 힘들겠지만.

김장배추를 심기 위해 봄배추와 양파, 마늘을 심었던 밭을 정리했다. 봄 농사 끝나고 트랙터로 몇 차례 갈아서 풀을 잡아보려 생각했지만 잦은 비 때문에 풀이 많이 자라버렸다. 풀을 예초기로 베고 말려서 태우는데 한 쪽 구석에 마늘과 양파를 심고 멀칭해 둔 비닐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양파와 마늘도 수확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싹이 돋아나고 비닐을 고정했던 플라스틱 핀들도 사방에 흩어져 있다. 아내가 다친 후 농활 온 신학생들과 했던 일이다. 풀이 자라버린 곳에 남겨진 비닐을 걷는 것은 수확 직후에 하는 것보다 품이 훨씬 더 들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아도 남들보다 늦은 배추 정식이 또 늘어진다. 아내가 몸이 온전해서 봄에 일을 함께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아내의 손길이 닿지 않은 빈 자리를 새삼스럽게 느낀다. 사흘에 한 번씩은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야 온전한 농사꾼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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