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우
순천광장신문 발행인

엊그제 한 작은 마을 축제장에 갔다. 사람들이 차곡차곡 무대 앞에서부터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맨 앞 한 줄은 비워놓았다. 귀빈석이다. 귀빈은 늦게 가도 가장 앞줄 자리를 차지하고, 사회자는 깍듯이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해준다. 축제장에는 대단한 권위들이 근엄하게 앉아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탄생한 지자체장들은 앞다투어 탈권위주의를 내세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취임식’이 아닌 ‘임명식’이라 명명했다. 취임식은 당선인이 주체라면, 임명식은 시민이 주체다. 백두현 고성군수는 별도의 초청장 없이 누구나 참석하는 취임식을 준비하며, 백 군수가 식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군민들을 맞으려 했다. 광주, 대전, 인천, 춘천 등에서는 실내가 아닌 광장에서 간소하게 치르려 계획했다. 취임식 하나에서부터 과거의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주권자인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자치 행정에서 권위주의를 탈피하려면 먼저 갖춰져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행정의 투명성과 정보의 온전한 공개다. 권위주의는 ‘깜깜이 행정’과 ‘짬짬이 결정’을 통해 실현된다. ‘깜깜이 행정’은 과정과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 ‘짬짬이 결정’은 혈연, 지연, 학연 등 이런저런 사적 인연이 공적 결정에 중요 변수로 자리 잡는 것이다.

최근에 순천시와 건설업체 간의 협약서 하나를 찾으려 했다가 시청 홈페이지를 아무리 헤매도 결국 허탕을 치고, 주무부서에 연락해도 쉽게 얻을 수 없었다. 순천시 행정의 투명성과 공개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 사례인듯하여 씁쓸했다.

순천광장신문이 순천 시민에게 ‘신임시장이 지금 가장 힘써야 할 부분’을 물었을 때, 순천 시민 두 명 중 한 명(46.5%)이 “자치행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제고”라고 답했다.(본보 1면 참조) 지금까지 ‘시민이 주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은 시장은 없었다. 주인 행세를 하려면 아는 게 있어야 한다. 시민이 행정을 알려면 행정의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투명하지 않은 행정, 시민의 눈으로 쉽게 볼 수 없는 행정은 반드시 썩게 되어있다.
허석 시장은 지난 3월 26일 청렴 선언문을 발표했다. ‘순천 시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머슴의 자세로 시민의 뜻에 복종’하며, 혈연, 지연, 학연을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이 말이 헛말이 아니기 위해서는 서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3년에 시작한 ‘서울정보소통광장’은 서울시에서 생산되는 모든 행정 정보를 자동으로 공개하는 시스템이다. 법령에서 정한 비공개 사항과 개인 정보를 제외한 모든 행정 정보가 공개된다. 특히 결재 다음 날 결재문서가 원문으로 공개된다. 2015년부터는 투자출연기관 뿐만 아니라, 주민참여사업의 모든 결재문서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특히 ‘건설사업정보’ 등 장소와 관련 있는 정보는 지도와 함께 제공한다.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검색서비스가 발전하여, 소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격식 타파와 의전 축소는 권위주의를 벗어나는 첫걸음일 뿐이다. 탈권위주의가 탄탄한 대로가 되기 위해서는 행정정보 공개의 획기적 진전이 필수적이다. 이는 시정에 시민의 전방위적 참여를 촉진할 것이다. 진정한 협치는 시민과 행정부가 아는 것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시민이 궁금한 것을 깨끗하게 공개하는 것, 이것이 모든 일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순천의 귀빈들이여, 이제 마을 축제에는 굳이 참석하려 애쓰지 마시라. 축제는 시민이 즐기도록 내버려 두시라. 축제의 주인은 시민이 되게 하시라. 순천의 지도자라면, 일상생활이 축제가 되는 순천을 만드시라. 축제장에 참석할 시간에 시민의 생활이 축제처럼 가볍고 즐거운 생활이 되도록 고민하고, 정책을 만들고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애써주시라. 축제장 말고 축제 같은 일상생활에서 당신도 함께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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