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가게 수익금으로 여행을 떠나다
우리 나라에는 ‘학교밖 청소년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는 이 사람들을 위기청소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학업중단 청소년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단어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문제가 있어서 학교를 나왔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언론에 소개되는 이미지로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된다. 학교를 나온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순천에도 학교밖 청소년들이 있다. 순천에서는 주로 ‘순천시 학교밖청소년 지원센터’에서 이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검정고시 준비도 함께 하고 자격증을 따는 것도 도와주기도 하고 긴급 생계비를 지원해 주기도 한다. 그들이 학교 안에 있을 때 받는 교육적 혜택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나라에서는 학교를 나온 순간 일인당 국민에게 쓰여야 할 교육비를 받지 못한다.

학교를 나온 청소년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은 지역인데, 지역 사회에서는 이들을 품어줄 여력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모든 지역 사회단체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아예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이번에 순천시 학교밖 청소년들이 제주도 여행을 갈 수 있게 된 것은 순천지역에 있는 아름다운가게 수익금을 학교밖 청소년들에게 지원해주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수익금을 어떻게 하면 학교밖 청소년들에게 잘 쓰일 수 있을지를 논의하는 사람들(KYC, 순천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도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사람들은 어떠한 금전적 댓가가 없어도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학교밖 청소년들을 위해 쏟았다.
 

▲ 투명카약을 체험하고 있는 청소년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청소년들
아름다운가게가 지원해준 금액은 총 1900만 원이었다. 그 가운데 1400만 원으로 18명의 학교밖 청소년과 5명의 비청소년들이 7박8일 동안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버스를 대절해서 주요 관광지를 ‘찍는’ 관광이 아니었다. 같이 밥을 해 먹고, 걷고, 버스로 이동하고, 제주도 사람들 만나며 이야기 듣고, 제주도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 체험을 하는 그런 여행이었다. 때로는 올레길을 걸으면서 제주도의 풍광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제주도민의 아픈 역사의 현장을 탐방하면서 제주도민의 말을 통해 아픈 과거의 역사, 현재의 삶을 체험해 보는 여행이었다.

처음에 이 여행을 기획했을 때 나는 학교밖 청소년들은 이런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별로 없을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런 편견이 기분 좋게 깨졌다. 예상과 달리, 청소년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귀기울일 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았다. 첫날부터 함께 여행을 했던 인형들을 제주 4·3사건으로 죽은 아이들이 묻혀 있는 무덤에 놓을 줄 아는 청소년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초코렛을 못 먹어 봤을 거 아니에요”하면서 부모님께 드리려고 샀던 초코렛을 애기무덤에 놓을 줄 아는 청소년들이었다.
 

▲ 올레8코스클 다 걷고 찍은 단체사진

규칙없는 여행
여행 첫날 회의에서 나는 같이 여행하는 청소년들에게 “규칙없는 여행‘을 하자고 했다. 미리 생길 문제들이 두려워 규칙을 정하기보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규칙을 정하자고 했다.

결론적으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어떠한 규칙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자기가 먹은 그릇을 자기가 설거지하면, 설거지를 자원한 사람들이 조금 편하지 않을까“하는 정도의 안내들은 있었지만, 어겼다고 해서 벌칙이 주어지는 그런 규칙은 없었다. 청소년들은 규칙이 생기면 불편한 상황이 생겨날 것이라는 것을 이미 본능적으로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고, 어떻게든 규칙이 만들어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조심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밥하고 설거지 하는 것도 하고 싶은 사람이 하고, 술·담배에 대한 원칙들도 스스로 정하고 지키려고 노력했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암묵적으로 형성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어떠한 제재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큰 무리없이 여행은 진행되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나는 “사람은 믿어주는 만큼 스스로 책임지려고 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
 
순천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들
아름다운가게 지원금은 총액으로 보면 적지 않은 지원금이었지만, 18명의 청소년들이 7박 8일 동안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넉넉하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많은 드는 체험은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당수의 아이들이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싶어했다. 여행 중간에 페이스북에 “순천 학교밖 청소년들에게 스쿠버다이빙을”이라는 주제로 모금을 시작했다. 몇몇 학교밖 청소년들은 “누가 돈을 주겠냐”며 의심스러워했다. 하지만 모금은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어서 3시간 만에 목표금액인 40만 원을 돌파했고, 하루 만에 총 61만 원의 돈이 모였다. 그 돈으로 15명의 아이들은 스쿠버다이빙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지만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본 학교밖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교육적 경험’이었다. 
 
일상으로의 복귀          
몇몇 친구들은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 “내가 다른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7박 8일 같이 여행하는 동안 서로는 아주 가까워져 있었다. 처음의 걱정은 기우였다. 그들에게 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경험은 아주 소중해 보였다.

하지만 여행 마지막날, 이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숙소에 나란히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아직까지 나의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다. “우리 일상으로 돌아가서 잘 살 수 있겠지?”     

나 또한 7박 8일 동안 청소년들과 제주도를 다녀온 뒤 한동안 일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거칠지만 그 속 안에 담겨져 있는 순수함의 맛을 느꼈기 때문에.

여행을 함께 한 그 한사람 한사람 아이들의 삶이 가슴깊이 박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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