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광장신문은 협동조합이 만든 신문이다. 조합원들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담을 때 협동조합 언론으로서 그 가치와 의미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이 곧 순천지역의 다양한 사람들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공동체를 따뜻하게 할 것으로 보고‘IN 순천, 순천인’을 기획한다.

 

 

▲ 아들! 내년 어버이날에도 엄마 신발 사줄 거지?”

택배가 왔다.
열어보니 구두다.

둘째가 보낸 어버이날 선물인가보다. 5월 8일에 도착했으니 짐작만 할 뿐이다.
‘엄마 사랑해요.’라고 짧게 카드라도 한 장 적어주지는…

나는 아들이 둘이 있다. 큰아들은 어릴 때부터 곰살맞고 다정해서 어느 집 딸보다 사랑스러웠다. 공부도 곧잘하고 목소리가 맑아서 노래를 잘했었다. “엄마! 목말라요. 엄마! 주스 주세요. 엄마 저는 오렌지 주스가 좋아요. 엄마! 저는 달걀 먹고 싶어요.” 어찌나 재잘재잘 자기표현을 잘하던지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지만 첫애라서 그런지 힘든 줄 모르고 키웠다. 

첫정이 무서운 거지. 이런저런 재능이 많고 붙임성이 좋아서 동네 어른들도 아주 귀여워 해주었다. 아빠직장 따라 이사하느라 자주 전학을 했어도 큰아들은 금방 친구를 사귀어서 어려움이 없었다.

세 살 터울로 태어난 둘째는 어찌나 형하고 다른지! 외탁한 큰애와 달리 둘째는 영락없이 박가네(시댁) 핏줄이었다. 무뚝뚝해서 좋은 것 싫은 것도 표현하지 않으니 답답할 때가 많았다. 

네 살 되던 해 여름, 80년대 초니까 선풍기 하나로 버티던 시절이었다. 큰애는 덥다고 말을 하니 자주 씻어주고 목이랑 겨드랑이에 파우더를 발라 주었었는데 이 녀석에게는 손이 덜 갔나보다. 목에 땀띠가 더덕더덕해져도 따갑다 간지럽다고 말을 하지 않고 가끔 제 손으로 긁기만 했다. 

내 배로 낳은 아이들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까? 손가락을 깨물면 똑같이 아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 연향동에 사는 송혜정 씨 : 둘째 아들이 혈액암 치료 중인데 많이 호전되어 걱정을 덜었다고 한다. 작은 소망은 매년 어버이날에 아들의 선물을 받는 것이다. 내년에는 더 예쁜 선물 받고 자랑하시길 바랍니다.^^

두 아들은 그렇게 다르게 성장했다. 큰아들은 기대한 바대로 성적이 좋아서 그럭저럭 편하게  대학에 진학한 후 입대를 했다. 작은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더니 대학에 취미가 없다며 바로 입대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느 집과 비슷한 삶이었다.

제대하고 돌아온 큰애가 갑작스러운 말을 했다. “엄마! 저 학교 그만두고 가수 할래요.”
어릴 때 노래를 자주 부르고 칭찬 몇 번 한 적은 있었지만 가수라니? 이런 황당한 미래가 올 거라고 한 번도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다. 찬성도 반대도 해볼 겨를 없이 자기 뜻대로 살겠다며 큰아들은 내 품을 허망하게 떠났다. 

무엇이 이 아이를 이렇게 변하게 했는지? 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2년 만에 이렇게 돌변했는지? 그 후로 큰애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부모 속 썩이는 일을 10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했다. 누구에게 큰 빚을 졌는지 집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밖으로만 돌았다. 그걸 해결하느라 평생 살았던 집도 사라지고 남편 퇴직금까지 지키지를 못했다.


형하고 반년 차이로 제대를 한 둘째에게 이 모든 짐이 돌아갔다. 제대하자마자 몇 달 쉬지도 못하고 취업을 했다. 좀 더 나은 일을 찾아보겠다며 경기도로 직장을 옮겨가는데 이제야 작은애가 눈에 보이는 거다. 무뚝뚝한 녀석이 툭 하고 짧게 말했다.
“일하지 마세요. 생활비 보낼게요.”

작은아들은 그렇게 5년 동안 생활비를 보냈고 어느 날은 차를 사고, 어느 날은 회사 기숙사를 나와 작은 전세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또 어느 날 18평 아파트를 산다고 좋아했다. 그러더니 서른다섯이 되던 재작년에 결혼했다. 고운 며느리와 첫 손녀도 보았다.

설날에 아이들 먹이려고 강정을 만들고 있는데 며느리한테 전화가 왔다. 
“어머니! 오빠가 감기몸살이 걸렸나 봐요. 이번 명절에 쉬고 싶다고 해요.”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시댁이 오기 싫은가? 이 녀석은 또 그 장단을 맞춰주나 보다. 젊은 애들이 다 그렇지 싶어서 그러라 했지만, 서운한 맘이 들었다. 

설 지나고 대보름이라 전화를 해보았는데 아들도 며느리도 통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며칠 지나 전화가 왔는데 며느리다. 
“어머니! 오빠가 이상해요. 매일 늦잠자고 계속 피곤하다고 해요. 감기도 너무 오래가고요.” 
불안한 예감이 틀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작은아들 상훈이가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형한테 치여서 사랑도 제대로 못 받고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이 녀석, 부지런하고 자기 관리 철저했던 아이인데, 술 담배도 전혀 안 하는 아이인데, 왜 내 아들이? 이런 큰 병은 남들만 걸리는 줄 알았다. 그동안 암 치료를 받는 지인들에게 문병 가서 내가 했던 위로들은 얼마나 하찮은 일이었나?

치료를 받으면서도 별말이 없던 아들이 골수검사를 한 후에 의사에게 질문했다.

“저…혹시 이 병이 유전되나요?” 담당의가 “어휴! 무슨 말씀이세요? 전혀 유전되는 병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본인 치료 열심히 하시게요.” 그제야 아들이 흐느껴 울었다. “엄마! 유전 아니래요. 우리 하영이 괜찮대요.” 그사이 딸 걱정만 하고 있었나 보다.

너는 어찌 된 아이니? 너는 왜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안 하니? 왜 엄마가 계속 미안하게 만드니?

전화벨이 울렸다. 
“안 커요? 235죠?”
“그래. 크지도 작지도 않고 딱 맞고 이쁘네. 아들! 내년 어버이날에도 엄마 신발 사줄 거지?”

한참 있다가 대답한다.
“네…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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