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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농사
김계수 조합원  |  dal-nam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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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호] 승인 2018.05.17  09: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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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는 여전히 농촌지역이 도시지역 보다 압도적으로 넓다. 도시문제와 함께 농촌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외서면에서 17년 째 농사를 짓고 있는 김계수 조합원이 농촌의 일상을 전하는 칼럼을 싣는다. <편집자 주>
   
▲ 김계수 조합원


지난 달 말에 고추 모종을 본밭에 냈다. 100평의 비닐하우스에 600주 남짓 심었다. 고추는 1년 농사에서 가장 먼저 파종하는 작물이다. 1월 말에 씨를 넣고 1주일 후에 움이 튼 후 날마다 아침이면 모판을 덮은 비닐 터널을 걷고, 낮에 물을 주고 저녁에 다시 비닐 터널과 보온 덮개를 덮어주기를 석 달 동안 반복해서 얻은 모종이다. 고추 심을 철이면 종묘상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지만, 육묘를 전문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집에서 자급용으로 고추모를 키우는 데는 결코 간단치 않은 노고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하루라도 실수를 하면 추위에 모종을 모두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추가 재배되는 총면적은 벼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고 한다. 그러나 재배 농가 수로 보면 단연 으뜸일 것이다. 농부는 말할 것도 없고 도시민으로서 텃밭을 조금이라도 가꾸는 사람에게도 고추 몇 주는 기본 메뉴고, 심지어 아파트 베란다나 화단에도 삼겹살에 얹어 먹을 풋고추를 따먹으려고 심기 때문이다. 고추는 우리의 식단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식품이고, 수요량도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수요가 모든 사람에게 보편화되어 있어 수요량이 많은 작물은 환금(換金)성이 좋다. 그래서 농가 입장에서 보면 고추 농사는 잘만 지어놓으면 짭짤한 현금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결과를 예단할 수 없기로 고추 농사를 능가할 작물도 없다. 고추는 아마도 농가별로 수확량의 편차가 가장 큰 작물일 것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고추 농사가 어떤 작물보다도 병해충에 민감하고 취약하기 때문이다.

고추에 가장 흔하고 치명적인 병은 탄저병과 역병이다. 탄저균은 생화학 무기로 개발될 만큼 인간에게 두려운 것인데, 고추에도 마찬가지다. 풋고추가 점점 커져 수확에 대한 기대를 품을 무렵 열매의 몸통에 동그란 반점이 생기고 점점 커지면서 썩어 들어간다. 확산하는 속도도 매우 빠르고 나중에는 잎도 썩게 된다. 이 병이 한 번 붙으면 어떤 농약으로도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확을 포기해야 한다. 철저한 예방만이 대책이다. 그래서 관행으로 고추 농사를 짓는 경우에는 풋고추 때부터 거의 1주일에 한 번씩 늦가을에 수확이 끝날 때까지 농약을 한다.

그런데 비가림 비닐하우스에 심은 고추에는 탄저병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가 탄저병의 주된 원인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적에 비해 요즘 탄저병이 훨씬 많아진 데에는 종자를 극단적인 다수확 위주로 개량하면서 병해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진 탓도 있겠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품질이 옛날보다 훨씬 나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역병은 뿌리에 침투한 병균이 수분과 영양분의 흡수를 막아 나무 전체가 하얗게 말라 죽게 하는 병이다. 땅 속 수분을 통해 빠르게 전염되고 나중에는 고추밭 전체를 하얗게 만든다. 역병 또한 한 번 발병하면 탄저병처럼 역전은 거의 불가능하다.

고추는 토마토나 오이처럼 연속으로 열매를 맺으면서 한편으로는 익어가기 때문에 다수확을 위해서는 새로운 열매의 착과를 촉진하면서도 빨리 익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목적을 위해 필요한 영양 공급은 서로 모순 관계에 있어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고추 농사를 잘 짓는 농부는 모든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고 부지런한 농부로 보아도 된다. 그만큼 작물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있고, 농약과 비료를 필요한 때를 놓치지 않고 잘 하기 때문이다.

고추 농사는 파종에서 수확하고 판매하기까지 가장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하는 농사다. 육묘 기간도 석 달이 걸리고 정식하면 지주대 박고 가지가 쳐지지 않게 유인줄 매 줘야 하고 곁순 따주고 한여름 더위에 모기와 땀과 싸워가며 수확해야 한다. 고추를 딸 때는 땅에 앉기도, 서기도 애매해서 허리가 휠 지경이다. 수확한 고추는 물에 잘 씻어 말려야 하고 빻기 전에 매운 냄새 참아가며 꼭지를 다듬어야 한다. 그러나 고추는 결실의 이미지를 색감으로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물이다. 무성한 진녹색의 잎들 속에서 선홍색으로 반짝거리는 잘 익은 고추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환희고 그간의 고생을 상쇄해주는 마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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