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자 김현진의 재미있는 순천사]

지역의 정체성은 그 지역이 갖는 자연환경이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정립된다. 이는 지역의 공간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순천 지역의 공간 인식은 소강남(小江南)・선향(仙鄕)・수죽향(水竹鄕)으로 나눌 수 있다. ‘소강남’ 인식부터 살펴보자.

순천(順天)이란 지역명은 1310년부터 사용하였고, 그 이전에는 감평(欿平)・사평(沙平)・무평(武平)・평양(平陽)・승평(昇平)・승주(昇州)・연해(兗海)・승화(昇化) 등으로 일컬어졌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산수가 기이하고 수려하므로 ‘소강남’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순천을 소강남이라 부르는 이유가 단지 그 때문만 일까?

음력 3월 3일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다. 여기서 ‘강남’은 바로 중국 양자강(揚子江)의 남쪽 지역으로, 강소성(江蘇省)・절강성(浙江省) 등을 일컫는다. 이들 중국 강남 지역과 순천 지역의 연관성은 다음과 같다.

금릉(金陵)은 현 중국 강소성 남경(南京)의 옛 이름이고, 남당(南唐,937-975) 때 강녕(江寧)으로 개명되었다가 다시 승주(昇州)로 바뀌었으며, 명나라 때 강남성(江南省)이 되었다. 중국 남당 시기는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초기에 해당한다. 한편 당나라 이백(701-762)은 「등금릉봉황대」란 시에서 “삼산은 푸른 하늘 끝에 반쯤 솟았고, 강물 두 줄기는 백로주에서 나뉘네.[三山半落青天外, 二水中分白鷺洲.]”라고 하였다. ‘삼산’은 남경의 서남쪽에 세 개의 산봉우리가 나란히 연결된 산이다. ‘이수’는 진수(秦水또는秦河)와 회수(淮水또는淮河)로, 남경을 경유하는 양자강이 나뉘어 백로주란 삼각주를 형성한 물줄기를 가리킨다. 이상을 순천 지역과 연계해 보면 ‘승주’라는 옛 지역명 및 용당동의 삼산[원산(圓山)]과 동천・옥천의 이수로 이루어진 자연환경의 유사점이 있다.

▲ 서주 연자루

또 강소성 서주(徐州)의 운룡호에는 서주의 대표적 누정으로 꼽히고, 장음(張愔)과 관반반(關盼盼)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연자루(燕子樓)가 있다. 순천에도 읍성 남문 위 누각이었으나 지금은 죽도봉공원에 복원되어 있는 연자루가 있고, 거기에 승평 군수 손억(孫億)과 호호(好好) 및 박충좌(朴忠佐)와 벽옥(碧玉)의 사랑이야기가 전한다.
 

▲ 순천 죽도봉 연자루. 본래는 순천부읍성 남문위 누각이었는데 지금은 죽도봉에 복원했다.

절강성 항주(杭州)의 천목산(天目山)은 종교의 명산이다. 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은 1085년 항주로 가서 정원(淨源)의 문하에서 화엄사상을 공부하고 1086년 귀국하였다. 1088년 그는 선암사를 중창하고, 선암사가 있는 청량산(淸凉山)을 항주 천목산처럼 불법(佛法)의 성지로 여겨 조계산(曹溪山)으로 개명하였다. 한편 여규형(呂圭亨,1848-1921)은 1921년 「조계산선암사사적비」를 지으며 조계산의 산세를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추는 듯하다.[龍飛鳳舞]”라고 표현하였다. 여규형이 천목산을 설명한 소식(蘇軾)의 시 구절을 차용한 것인 듯한데, 이는 자연환경의 유사점을 언급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항주 서쪽에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풍경이 아름다운 서호(西湖)라는 호수가 있는데,  예로부터 문인과 묵객들이 찾는 명승지이다. 순천의 동천은 읍성 동문 밖에서 고리모양의 호수를 형성하였고, 사람들은 거기서 뱃놀이를 하거나 헤엄치거나 노닐었다. 김윤식(金允植(1835-1922))이 1914년에 지은 「환선정백련사기」에 의하면, 그 호수는 소서호(小西湖)라 불렸다.

이상을 종합하면 우리나라를 중국에 견주어 ‘소중화(小中華)’라고 하듯, 강소성 남경의 ‘승주’라는 옛 지명과 삼산이수 자연경관의 동일성, 강소성 서주의 연자루와 같은 이름의 누정 소재, 절강성 항주의 천목산에 비견되는 조계산의 성지 인식과 산세의 유사성, 항주 서호를 본떠 이름 지은 동천의 소서호 등으로 인해 순천 지역은 고려시대부터 소강남으로 인식되었고, 또 그런 인식을 사람들이 곳곳에 투영하였다.

이러한 ‘소강남’ 순천 인식을 조선시대 문인들은 대개 연자루와 결부한다. 예컨대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순천부사로 가는 이염의(李念義,1409-1492)를 전송할 적에 그의 정사가 팔마비의 주인공 최석(崔碩)보다 낫기를 바라며 “순천 사람들은 그곳을 소중화라 하는데, 연자루 앞의 경치가 더욱 좋네. 팔마비는 지금도 남아 있을까, 옛 어진 정사가 어찌 그대보다 나으랴.[昇平人說小中華, 燕子樓前勝槩加, 八馬有碑今在否, 他時賢政孰君多]”라고 읊었다.

‘소중화’는 곧 ‘소강남’이며, 소강남 순천의 승경 감상처가 바로 연자루이다. 소강남 인식과 연자루의 관련성은 나중에 더 자세히 기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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