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이 되면 지유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콩나물공장 할머니’
일요일 오후 12시쯤 64번 버스에서 만나는 할머니 두 분을 지유는 ‘콩나물 공장 할머니’라고 부른다. ‘콩나물공장 할머니’는 콩나물 공장으로 일하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유가 할머니들에게 붙여준 호칭이다. 콩나물공장 할머니는 두 분인데, 상사면사무소에서 먼저 타는 할머니는 모자를 쓰고 다니시기 때문에 ‘모자 쓴 콩나물공장 할머니’라고 부르고, 그 다음 정류장에서 타는 할머니는 ‘모자 안 쓴 콩나물공장 할머니’라고 부른다.
 
처음부터 이들의 사이가 각별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겠지만, 자주 보게 되고, 그러면서 몇 마디 말이 오가기 시작하고, 몇 마디 말들이 서로의 벽을 허물었다. 그러다보니 서로는 각별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어쩌다 서로 사정이 안 돼서 일주일을 건너 뛰고 2주 만에 만나면, 지유는 “2주 동안이나 콩나물 공장 할머니를 못 만났네”하고, 콩나물 공장 할머니는 “지난 주에 너 보려고 청암대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는데 그냥 지나가서 못 봤네”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일요일이 되면 지유는 11시 55분 버스를 타기 위해 부지런해진다. 집을 나서기 전에 콩나물 공장 할머니에게 줄 간식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늘은 무엇을 줄까 고민하고, “또 니 먹어라고 하실 텐데”하며 걱정을 하기도 한다.

문화마을에서 지유가 먼저 버스를 탄다. 그러면 지유는 그때부터 그 다음 정류장에 콩나물 공장 할머니가 있을지 없을지가 궁금해진다.

정류장 가까이에 오면 정류장에 누가 있나 없나를 살피고, 버스 앞쪽 출입문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타기만 하면, 지유는 “모자 쓴 콩나물 공장 할머니가 탔다”며 환호성을 지른다. 그 소리를 듣고, 콩나물 공장 할머니도 “어이쿠, 우리 지유도 탔네. 다음 정류장에서 할머니 한분 또 타실거야” 한다.

지유는 다음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 앞쪽 출입구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 출입구가 열리고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타면 지유가 “모자 안 쓴 콩나물 공장 할머니도 타셨네”한다. 그러면 할머니도 또 “우리 지유 왔구나”한다. 서로를 확인하고 짓는 웃음은 해맑다.

할머니들이 버스에 타시면 지유는 주섬주섬 챙겨온 간식들을 할머니들에게 건넨다.
처음에 할머니들은 “니 먹어”하시면서 간식을 잘 받으시지 않더니, 이제 “나중에 간식으로 잘 먹을게”하며 소중하게 가방에 챙겨 넣으신다.

특별한 날이 되면 할머니들은 가끔 지유에게 용돈을 주신다. 하루에 두 시간 콩나물공장에 일하러 가시는 할머니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한사코 거절하다가도 “이 늙은이를 이렇게 기다리고 환하게 웃어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하시면서 내미는 돈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특별히 서로 오가는 말은 없지만, 일주일에 한번, 10여분 동안 서로 같이 있는 그 시간은 그들에게 특별해 보인다.

“오늘도 콩나물 공장 할머니가 버스에 타시려나?”
일요일 아침이 되면 지유가 하는 말이다. 일요일이 되면 지유는 콩나물공장 할머니를 기다린다. 아마 콩나물공장 할머니도 ‘지유’를 기다릴 것이다. 지유와 할머니는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는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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