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 ‘너머’라는 공간이 있다. 사람들이 ‘너머’가 뭐하는 곳이냐고 물으면 한 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돈을 내지 않고도 누구나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난 그곳에서 ‘'너머'’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너머’가 만들어진지 1년이 지났다.
 
‘너머’에는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는 원칙(?)이 몇 가지 있다. 내가 세운 원칙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너머’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켜나가고 있다.

첫 번째 원칙은 이 공간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돈을 낼 수는 없다. 공짜로 이용해도 되지만, 무언가를 내고 싶으면 현물로만 낼 수 있다. 몇몇 분들이 후원금을 주시고 가셨지만, 그 돈은 다시 돌려 드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내지 않으면 물건을 살 수 없고 공간을 이용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돈을 내지 않고서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돈을 내지 않고 공간을 쓴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돈을 내지 않고 쓰니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돈 내지 않고 쓰라고 하지만, 막상 돈을 내지 않고 공간을 사용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너머’ 돌잔치 때 어떤 한 사람이 ‘모두의 통장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해서, 한번 해 보기로 했다. 공간을 이용하고 돈을 내고 싶은 사람은 ‘모두의 통장’에 돈을 넣고, 그 돈은 또 필요한 누군가가 가져가는 방식으로 한번 해 보자고 했다.
 
‘너머’에는 ‘모두의 냉장고’와 ‘모두의 서랍’, ‘모두의 탁자’가 있다. 일본에 있는 as one 커뮤니티를 다녀와서 만들어 보았다.

‘모두의 OO’에 있는 물건은 누구라도 이용하거나 가져갈 수 있다. 무언가를 가지고 오지 않아도 가져 갈 수 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확실히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고 싶어서 만들었다.

‘너머’에서는 물건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물건의 주인이 바뀐다. ‘모두의 OO’에 물건을 놓으면 누구나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물건은 누구의 것이 아니게 되지만, 그 외의 장소에 있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의 것이 된다. 특별히 전화해서 누군가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면, 그 물건은 일단 그 사람의 것이 되지만, 그 사람이 가져가기 전에 누군가 가져가버리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ㅎㅎㅎ

‘너머’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겁고 편안하게 지내지만, 그 중에서 아이들이 가장 즐겁게 노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너머’를 가자고 하면 대부분 즐거워한다. 추측컨대 아마 그 공간에서 부모나 다른 어른들에 의해 제지받지 않고 자유롭게 놀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아직 어른들은 모임이 있거나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너머에 이유없이 오거나 멍때리러 들르는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 ‘너머’를 이용할 때 누군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카카오그룹에 일정을 등록하기만 하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어떨까? 모두가 주인인 공간, 누구도 주인이 아닌 공간은 가능할까? 오늘도 그 실험의 와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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