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독일 1833~ 1897)
‘시대의 정신에 최고의 표현을 부여하는 사람’. 작곡가이면서 잡지를 펴내고 왕성한 저술활동을 했던 슈만은 스무 살의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를 이렇게 소개한다. 젊은 나이에 세상에 데뷔하게 된 브람스는 단숨에 주목을 받았고 심지어 아직 그의 음악을 들어보기도 전에 유명한 음악 출판사는 슈만의 추천에 따라 작품을 출판했다. 작곡가에게 이러한 출발은 드물고 엄청난 행운이리라. 그는 이러한 시선들이 부담스러웠고 이때부터 작곡하고 마음에 안 들면 모두 태워버리거나 찢어버리는 습관이 생겨난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판도 강했고, 또 세상에 함부로 내보이기 싫다는 자존감이 강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엄청난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오히려 완벽주의자가 된 그는 시작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속한 시대와 영원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통감했으며, 자신의 전진을 일생의 삶을 통해 보여주었다.

브람스와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와의 평생에 걸친 사모와 애정은 매우 유명하다. 클라라는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당대 최고의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였고 브람스보다 14살 연상이었다. 브람스는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한 후 7명의 아이들과 함께 남겨진 클라라를 헌신적으로 돌보게 된다. 현악4중주에 비올라와 첼로를 더한 현악6중주 1번, 그중에서도 우수에 차고 아름다운 ‘브람스의 눈물’이라는 부제가 붙은 2악장은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으로 손꼽힌다. 브람스는 이 2악장을 피아노로 편곡하여 클라라 슈만의 41세 생일선물로 주었다. 클라라와 나눈 수많은 음악적 대화는 그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의 어린시절은 불우했다. 호른, 더블베이스 연주자였던 아버지는 음악가를 꿈꾸며 도시로 왔으나 초라하게 이리저리 전전했으며 궁핍했고 당연히 가정도 불화의 연속이었으며 16살 연상이었던 어머니와도 결국엔 결별하게 된다. 그 역시 어렸을 때 선술집에서 피아노를 쳐야만 했다. 이러한 사실은 모든 면에서 두드러진 브람스의 성격상의 이중성의 발단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과 지적인 필요에 관련된 모든 일에서 질서에 대한 현학적인 애착을 과시했으며, 지독히 꼼꼼한 정리벽이 있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선 이와 맞먹을 정도로 그의 부주의와 무관심은 유명했다. 또한 그는 방랑하는 비르투오소의 생활을 지극히 혐오해서 언제나 안정된 직위를 갈망했으면서도, 막상 그러한 기회가 오게 되면 번번이 구실을 만들어 그 기회를 놓치곤 했다. 그는 아이들을 사랑했고 안온한 가정의 행복을 꿈꾸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결혼을 포기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풍자와 냉담이란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지만 누군가 그에게 조력과 충고를 구했을 땐 당장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의 대표작 ‘독일 레퀴엠’은 한슬릭이 브람스음악의 요체로 평했던 ‘내면으로의 침잠’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원래 레퀴엠은 죽은 자를 위한 미사에서 연주되는 교회용 음악이나 독일레퀴엠은 연주회용으로 작곡되었으며 가사도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되어있다. 10년에 걸쳐 완성된 이 곡은 어머니의 죽음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황홀했던 가을이 땅으로 떨어지며 침잠한다. 오늘은 독일 레퀴엠을 음미하며 가사를 떠올리고, 모든 죽어가며 새로이 생명을 잉태하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귀한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

이재심
지오바이올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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