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섭 
    순천여고 역사교사

물산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난하여 일찍부터 강남 같은 고을이라던 순천이 피비린내 진동하는 죽음의 고을이 된 것이 70년 전의 일이다. 3살박이로 형수 등에 업혀 있다 죽음을 면한 낙안 신전의 장홍석님은 일흔을 훌쩍 넘긴 노인이 되었다. 여순사건 순천유족회를 만들어 아버지의 신원을 위해 분투해 왔는데도 진실 규명을 받지 못한 장준표님은 병상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사건을 목격하거나 피해를 입은 분들이 한 분이라도 살아계실 때에 해야 될 일이 너무 많다.

여순사건은 기본적으로 14연대의 봉기, 군경의 가혹한 토벌, 이 과정에서 파생된 지역민의 고난을 합해 부르는 말이다. 사건의 발발과 전개 과정에 당시의 지배기구였던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여순사건은 국군 14연대가 제주 4.3 항쟁에 대한 진압을 거부하는 데서 촉발되었다.

제주 4.3항쟁은 단독 정부 대신 통일 정부를 수립코자 했던 우리 민족의 염원을 대변한 제주도인의 항쟁이었다. 그러함에도 당시 정부는 이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좌익에 의한 폭동으로 낙인찍고 극우 세력을 동원한 군경의 강제 진압으로 해결하였다. 이에 제주도민들은 처절한 노력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보상을 받아냈을 뿐 아니라 국가의 상징인 대통령으로부터 사과까지 받아낼 수 있었다.

지난해부터 제주도에서는 7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제주도 한복판에는 진즉 평화공원을 세워 영령들을 기리고 있다. 의로운 항쟁에 대해 살상을 거부한 것은 너무도 정당한 행위이다. 제주도인들이 떨쳐 일어나 스스로의 정당성과 권력의 부정함을 주장했을 때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여수 순천 사람들은 여전히 숨죽여 있었으니 얼마나 개탄스러운 일인가. 제주도인의 움직임이 있었을 때 우리 지역민들이 적극 동조하여 국가의 책임을 물었다고 한다면 여순 사건의 아픔은 상당 부분 해결되었을 것이다.

잘못을 감추려는 권력과 여기에 동조하는 일부 세력은 여순사건을 끊임없이 공격해왔다. 지난 2004년 순천시의 지원까지 얻어 사건 관련지 여섯 곳에 학술적으로 엄격하게 고증한 내용으로 안내판을 세웠지만, 모두 사라져 버렸다. 2006년에는 시민의 성금과 순천시의 지원을 받아 위령탑을 세웠지만, 일부의 내용을 트집잡는 일도 있었다. 어렵사리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법이 통과되어 일부의 진실 규명을 했지만, 이명박 정권이 수립되면서 중단되어버렸다.

촛불의 힘으로 수립된 현 정부는 여러 분야에 걸친 적폐를 청산 중에 있다. 세월호 참사로  상징되는 것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았던 것. 이게 가장 먼저 청산해야 할 대상이다. 시급히 특별법을 제정하여 보수 정권 하에서 중단되어버린 과거사 진실 규명 작업을 이어야 한다. 제주도는 중앙 정부보다 지방 정부가 먼저 나섰다. 순천시의회가 여순 사건 관련 조례를 제정했던 것은 칭찬할만한 일이다.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사건의 진실 규명과 지역민의 화해를 위한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역의 아픈 역사를 우리 역사의 발전을 위한 디딤돌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사건의 진실과 교훈을 담은 역사관과 공원을 충실하게 갖춰서 평화와 인권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는 것에서 더 나가가 심신을 치유하는 여행과 함께 의미있는 역사 현장을 둘러보는 여행이 각광받는 시대가 되었다. 어두웠던 기억을 되새기는 여행(다크 투어리즘) 공간으로 순천과 여수는 알맞은 곳이다.

사건 관련자와 피해자의 한맺힌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시급하다. 순천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한편, 관련 전문가를 모셔서 사건의 진실과 성격을 규명하는 것도 올해 안에 진행되어야 할 현안이다. 곧 있으면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지역의 역사를 보듬을 수 있는 일꾼을 뽑아서 70주년 행사를 의미있게 만들고, 당당하게 국가의 책임을 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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