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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의 유혹고흥 동강면 마실농장 안성현 씨
양현정  |  webmaster@agora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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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호] 승인 2017.11.16  17: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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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현 (44)– 순천시 별량면
     고흥군 동강면 매곡리 당곡마을 마실농장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품위 있고 잘생긴 처녀였다. 작약 빛 입술과 크고 순결한 눈은 그녀의 피부색과 전체 모습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였다. 나는 딸기를 그녀라고 하고 싶다. 테스는 딸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반은 즐겁게 나머지는 마지못해 받아먹는다. 그리고 바구니에 가득 담긴 딸기를 받아들고 만다. [ Tess -Thomas Hardy ]

‘달콤한 딸기의 유혹,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함, 우리 딸기 한번 보세요.’ 고흥 동강면 마실 농장의 농부 안성현 씨(44세)가 딸기를 자랑한다. 2014년 2월에 귀농했으니 이제 곧 4년이 되어간다. 고향으로 내려오기까지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귀농과 귀촌을 구별도 못했다는 그는 오직 아내의 응원만 믿고 딸기의 세계로 들어왔다.
 

   
▲ 탱글탱글한 딸기를 얻기 위해 한 줄기에 올라온 못나고 작은 열매들은 모조리 솎아낸다. 같은 물을 먹고 같은 빛을 보고 자라지만 제 각각의 열매들이 생기는 것을 보면 우리 사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동강면은 원래 나의 어릴 적 고향이었다. 잠깐은 다복했던 것 같다.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넓은 들도 있었다. 수리가 밝았던 아버지는 농업과 함께 제법 큰 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하셨다. 사고로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어머니의 재혼과 함께 나에겐 부모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할아버지마저 초등학교 때 돌아가신 후 할머니와 단둘만 남게 되었다. 어려서 잘 몰랐지만, 할머니가 나보다 더 힘드셨을 것 같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시절에 책을 읽고 신앙생활도 하셨던 지혜로운 분이셨다. 아마 할머니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항상 미래와 희망을 이야기하셨고, 교육자로서 꿈을 꾸게 해주셨다. “우리 성현이는 다음에… 우리 성현이는 다음에… 이러면 좋겠다.”

교육자가 되겠다는 꿈으로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은 나에게 이상과 현실이 다름을 알게 했다. 청소년기에는 몰랐던 지독한 가난과 패배감을 알게 하였다. 지독한 스무살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신학과 음악으로 전공을 바꾸었으나 고민은 끝이 없었다. 가고 싶은 길은 왜 그리 많고 가보지 못한 길은 왜 그리 많은지! 모든 것이 유혹이었다. 그 시절 아픔과 헛된 망상을 함께 해주고 기다려 준 친구가 지금의 아내이다. 참 오래 기다려주고 참아주었다.
 

   

▲ 먼저 손을 내밀어준 아내, 귀농을 찬성해 준 아내, 그녀는 언제나 딸기보다 더 큰 유혹이다.

아내와 나는 흔한 교회 오빠와 동생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부부가 되었다. 가장이 된다는 것은 무한한 책임감이다. 큰 아이가 태어나고 나의 목표는 오로지 가족이었고 안정된 삶이었다. 우리는 대부분 큰 차와 큰 집을 사고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는 것이 반듯한 삶이라고 단정한다. 나도 그랬었다. 나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이들에게 행복을 넘치게 채워주고자 부단히 애썼다. 아이들에게 ‘행복하게 살자. 남에게 피해를 주지말자. 남을 둘러보며 살자’라고 말했다. 그 정도 삶이라면 충분하다. 욕심내지 말자. 하지만 어떤 과정이든 괴리가 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해주려 했는데 발령이 나면서 주말부부가 되었다. 남을 둘러보는 그릇이 되자고 했으면서 실적으로 팀원들을 압박하는 상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또 한 번의 지독한 두 번째 스무 살이 온 것이다.

아빠로 가장으로 버텨야 하는 삶의 무게
어느 날 아내가 귀농에 대한 말을 먼저 꺼냈다. 변명이고 핑계였지만, 나는 그것을 아내의 결정이고 아내의 유혹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고향으로 다시 내려와서 딸기 농사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도시 생활에 지치면 느티나무 흔들리는 마당과 벤치, 주말 저녁에 즐기는 소박한 바베큐 파티를 상상한다. 나에게도 전원생활이란 한적함과 치유였다. 하지만 귀농과 귀촌이라는 단어조차 구별하지 못했던 나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공부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기 정착기에는 컨테이너에서 6개월 동안 살면서 어떤 품종을 키울 것인지 공부했다. 준비 없이 덥석 귀농하고 나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을 보았다. 또 하나의 걱정은 다시 돌아온 고향 사람들과 소통하는 문제였다. 누구와 어울려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어쩌면 그것은 앞으로도 끝없는 고민일 것이다.
 

   

▲ 순천 시내는 당일 배송이 가능하며 아침에 딴 신선한 딸기를 그날 맛볼 수 있다. 씻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딸기라고 자신하며 차나 주스를 위한 딸기청도 시도 중이다.

가능하면 무농약으로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씻지 않고도 바로 먹을 수 있는 딸기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땅에 심기만 하면 흙에서 자라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아침이 되면 딸기 넝쿨에 한 알 두 알 새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그중에 모양이 예쁘지 않고 작은 것은 솎아낸다. 한 줄기에서 가장 튼실하고 예쁜 열매만 남겨둔다. 결국, 딸기 넝쿨 속에도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 있었다. 경쟁과 치열함이 싫어서 이곳에 다시 왔지만 이제 피할 곳은 없다. 딸기는 나의 마지막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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