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호
순천대 한국서양사학회장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이 작성한 문서

문화·예술계 분야에 이어 역사학계에서도 블랙리스트가 확인되자 역사학계와 국민들은 경악하였다.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는 지난 10월 30일 조승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확보한 문서 ‘2016년 역사분야 학술연구지원 사업 공모 결과 검토’에서 그 존재가 명확하게 입증되었다.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이 이 문서를 직접 만들었고, 그 문서에 청와대의 개입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청와대는 2016년 상반기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한 사람들을 학술연구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도록 지시하였다. 교육부는 청와대가 보낸 ‘블랙리스트 가이드라인’에 따라 국정화반대 선언이나 토론회에 참여한 연구자들을 대거 탈락시켰다.

블랙리스트와 더불어 화이트리스트도 동시에 확인되었다. ‘문서’에 따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협력하거나 적극협력한 사람들은 모두 예외 없이 지원받았다. 문서에는 이름이 가려져 있지만 연구과제명이 나와 있어서, 국정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음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다.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를 통해 학술연구지원을 통제하고 차별한 것은 모든 국민이 차별 받아서 안 된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 11조를 위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반 헌법적 범죄행위이다. 지시를 내린 청와대나, 이를 받아서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연구비 지원을 차별적으로 진행한 교육부 모두 헌법을 위반한 것이다. 공무원들이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법과 규정을 어긴 점까지 용납하기는 어렵다.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작성배경, 주체, 실행과정 등이 낱낱이 밝혀지고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반헌법적 차별행위 용납하기 어렵다
이번에 확인된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에서 작성되었다. 따라서 역사학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은 국정화 과정에 대한 진상조사와 연결하여 진행해나가야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9월 25일 출범하였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출발시기가 너무 늦었고, 출범된 후 한 달 반이 지나는 동안 조사의 진척이 기대만큼 빠르지 않다는 점에서 역사학계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내년 2월말까지 6개월 동안 운영되는 한시적인 기구인데 벌써 4분의 1기간이 지난 셈이다. 이번 역사학계 블랙리스트가 진상위원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조승래 의원실을 통해서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도 문제이다. 또한 발표된 내용도 2016년 상반기의 특정 학술지원영역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 정부 전체시기에 걸쳐 역사학계에 대해 진행된 블랙리스트와 화이트 리스트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이 절실하다.

더딘 국정화 진상조사도 우려
지난 11월 6일 역사학계 55개 학회 및 연구소가 역사학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엄정수사와 엄정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서울 흥사단에서 열었다. 시국선언과 기자회견에 55개 단체가 참여한 것은 역사학계에서 역대 최대 규모이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역사학계의 분노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학계의 분노를 반영하여 진상조사위원회는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를 비롯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사안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규명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국정화와 관련된 교육부, 국사편찬위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도 진상규명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관련 기관의 기관장들이 모두 교체되었는데도 진상규명에 적극협력하지 않는다면 역사학계와 시민사회가 그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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