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YMCA, ‘공동체 메이커’로 만들고파

김석 전 시의원이 10년만에 ‘친정’ YMCA로 복귀했다. 사무총장으로 돌아온 김총장을 만나 일과 삶에 대해 들어 보았다.  <편집자 주>


▶ 새로 순천 YMCA 총장에 취임하신 걸 축하드린다.
9월 1일 취임해서 추석 연휴를 제외하면 1달 정도 일을 했다. 순천 YMCA에서 2006년에 시민사업부 간사로 일했는데, 10년 만에 돌아오니 많이 달라져 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순천 YMCA 70년 동안 놓치지 않았던 건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었다.

▶ 순천 YMCA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예전에는 순천 YMCA가 시민운동의 큰 기둥이었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요구가 다양해졌고, 시민운동도 개별 활동가에서부터 여러 분야로 많이 다양해졌다. 이런 문화적 변화와 함께 조직적 변화도 있다. 예전과 달리 순천 YMCA가 정부와 시민 사이의 중간 조직의 역할까지 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순천 YMCA의 역동성을 끌어올리는 게 필요하고, 나아가 지역민과 긴밀하게 호흡하려 한다.
 

순천 YMCA 김석 사무총장

▶ 지난 2014년 시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때는 정말 낙선의 ‘낙’자도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엔 쉽게 털어버릴 수 있겠다 싶어 낙선 인사를 1주일간 하고 다녔다. 2달 동안은 식당에 가서 밥값을 내본 적이 없다. 3개월 동안 집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그때 진주, 안산, 포항에서 마을공동체, 주민자치위원 교육, 자치 프로그램 지원 등의 내용으로 교육 섭외가 들어왔다.

그 무렵 시의원 보다는 마을 공동체 활동이 제 몸에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에게는 의정 활동 과정이 ‘소비적’이었다. ‘5분 대기조’처럼 긴장하면서 살았고, 지식, 역량이 금세 소비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 낙선 후 어떻게 일어섰나?
내가 잘 하고 맞는 것이 마을 공동체와 함께 하는 일이다. 조곡동 철도문화마을, 중앙동 천태만상 마을만들기, 주암 문성마을 등 제 손때가 안 묻은 곳이 없다. 그런 과정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주민의 속마음을 끌어내기 힘들었고, 회의 기법을 잘 갖춰지지 않았다. 그래서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공부했고 자격증도 땄다.

▶ 생활공동체지원센터에는 어떻게 참여했나?
2006~7년에도 마을공동체 사업을 진행하였었다. 생활공동체지원센터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중간지원조직이다. 그 누구에게 맡기는 것보다 제가 가장 잘 해낼 것 같았다. 하지만 지원센터에 들어가는 것이 개인적으로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형식적으로 시장의 임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 좀 걸렸지만, 내용적으로 그 당시 저에게 딱 맞는 일이었다.

 

▶ 마을공동체 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가?
지금 하는 공모사업 등은 마을만들기 사업이 아니다. 주민들이 맨날 ‘우린 들러리’라고 한다. 불만이 많다. 지금이 분기점이다. 문재인정권에서 ‘자치분권시대’를 얘기하고 있다. 이제 진짜 주민들에게 결정권을 주어야 한다. 동사무소의 행정기능은 공무원이 하고, 자치기능은 주민들이 하면 된다. 지금은 공무원이 갑이고 주민이 을이다. 동사무소 주변에는 2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다. 바르게 살기, 새마을운동 등이 마을을 좌지우지한다. 이건 아니다. 실재 일반 주민들의 자치기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 1달 동안 일해보니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무총장으로 돌아오니 이사님들, 회원들, 동역자들과 함께해야 하고 또 지역 내 많은 시민단체, 활동가들과의 공감대 형성해야 하는 등 부담이 앞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직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고, 또 지역에서 같이 호흡하다 보면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운동과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 순천 YMCA는 어떤 곳인가?
순천 YMCA는 ‘크리스천 어소시에이션’이라는 말대로 낮은 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어려운 사람에게 집을 내어주는 곳이다. 순천 YMCA는 가치로 움직이지, 기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순천 YMCA는 명확하게 평신도 운동을 하는 곳으로 누구라도 와서 손을 내밀 수 있는 곳이다. 교육 평준화 운동, 화상 경마장 반대 등 이전부터 지역 사회에서 따뜻한 어머니 품 같은 곳이 순천 YMCA다.

▶ 앞으로 순천 YMCA가 어떤 곳이길 바라는가?
순천 YMCA는 시민과 함께 갈 때 가장 힘이 있었다. 선도하는 게 아니라 시민과 동반적 관점에서 함께 가야 빛이 난다. 시민과 같이 낮은 곳에서 울고 웃는 순천 YMCA가 되고 싶다.
내부적으로는 순천 YMCA의 문화를 바꾸고 싶다. 조직 내부적으로 시대가 빠르게 변해가는 데 학습을 하면서 시대와 발을 맞추려 한다. 사무총장 임기는 4년이다. 지금 순천 YMCA 회원은 1,000명 정도다. 그런데 활동할 인력이 많아야 5명밖에 안 된다. 사람이 부족하다. 사무총장은 실무를 넘어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 부담이 크다.

순천 YMCA 1층 카페는 열려있다. 누구나 차 마시고 공부하고, 그리고 ‘사람책’을 열고 싶다.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가장 나이 든 분의 얘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영화를 통해 강좌를 열기도 하고, 미팅형식의 만남도 갖고, 낭독회 등 여러 방식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마을 만들기, 사회적 경제, 청년 활동가 등 규제받지 않고 활동하고 싶은 개별 활동가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 순천 YMCA가 시청과도 가깝고 해서, 엔지오 허브의 역할을 하면 어떨까 고려 중이다.

▶ 앞으로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가?
시민을 찾아가는 운동을 하려고 한다. 순천 곳곳에 ‘노란천막’을 칠 것이다. ‘시민들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라는 기치로 교육부터 자치, 복지 등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시에 제안하기도 하고, 공론화하기도 하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가령 주민참여예산을 한다고 하는데, 이게 성숙하게 발전하려면 주민이 잘 참여해야 한다. 또 지방자치시대인데, 나와 직접 관련된 것은 무엇인지, 가령 내가 시장이라면, 시의원이라면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이런 걸 열어놓고 얘기해보고 싶다. 다양한 시민의 의견을 쏟아낼 수 있는 ‘노란천막’을 열어보려고 한다.

▲ 순천YMCA 노란천막 캠페인-‘시민들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라는 기치로 교육부터 자치, 복지 등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시에 제안하기도 하고, 공론화하려 한다.

순천 YMCA는 예전에 ‘뉴스메이커’였다. 이제 회원의 참여, 시민의 참여를 통해 ‘공동체 메이커’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순천 YMCA에 후원하기를 잘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귀하게 사용할 계획이다.

▶ 마지막으로 가족은 어떻게 되나?
2006년에 결혼해서 아들이 둘이다. 초등학교 2학년, 4학년이다. 지난 일요일에는 교회에 갔다 와서 작은아들과 같이 야구를 했다. 최근에 큰아들이 야구를 시작했다. 실제로 가정에서는 제 역할을 못 했다.

김석 사무총장은 92학번으로 순천대 화학과에 들어갔다. 1993년 김영삼 정권이 WTO 쌀 수입 개방을 선언했다. 그 당시 대학생들은 대부분 농군의 자녀들이라서 쌀 개방하면 ‘농촌과 부모가 다 무너진다,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순대생들은 93년 겨울에 보름 넘게 거리로 뛰쳐나왔다. 거기에 합류했고, 3학년 때 과 학생회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단과대 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을 거쳐 연세대 사건으로 6개월간 수감생활 후 집행유예로 나왔다. 그 후 시의원으로 활동한 4년을 포함하여 순천지역 내 공동체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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