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 박두규
시인, 『생명평화결사』운영위원장

올 한 해는 수없이 많은 탄도미사일이 태평양을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 김정은과 트럼프의 말폭탄은 사실상 모두 한반도로 떨어졌지만 사람들은 불안과 걱정 속에서도 당장 먹고사는 일에 끌려 다니며 전쟁 발발을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편이다. 요즘 시대는 전쟁이 나면 너 죽고 나 죽고 하는 판인데 무슨 배짱으로 전쟁을 하겠냐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생각은 다를 것 같다. 김정은이 늘 미국 대 북한이라고 말하지만 베트남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처럼 이것은 한반도 전쟁일 뿐이고 핵폭탄이 날아도 죽는 것은 한반도의 너희들이고 나는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찌되든 중국이나 소련은 절대 미국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쏘지 않을 것이니(3차 세계대전은 국지전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국지전의 모습으로 한국전쟁이 다시 시작된다 해도 또는 전쟁이 나지 않는다 해도 이 국면은 미국의 위압적인 패권적 위상을 더 강고하게 하고 또 무기장사로 돈을 벌게 되는 일이니 트럼프 같은 장사꾼 입장에서 보면 이 말 폭탄 상황은 얼마간 계산된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은 이미 20세기 초중반부터 한 세기가 지나 21세기 현재에 이르도록 핵개발과 함께 전 세계를 대상으로 탄도미사일의 공격체제와 상대의 공격에 대한 다양한 방어체제를 쉬지 않고 업그레이드 시켜온 나라이니 그렇게 자신만만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참고로 미국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미니트맨Ⅲ는 최대 3개의 핵탄두를 장착하고 13,000km 떨어진 장소를 폭격할 수 있는 ICBM(로켓 엔진으로 추진해서 원거리에 도달하도록 비행하는 탄도미사일)이라고 한다. 미니트맨Ⅲ에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보다 위력이 20배나 강력한 300킬로톤 이상의 핵탄두가 장착되어 있고 수 분 안에 발사가 가능하며 30분 내에 전 세계 어디든 핵 공격이 가능하다고 하며 이 미니트맨Ⅲ에 사용될 탄두 수는 1,500여 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40여 년간 운용된 미니트맨Ⅲ는 2030년까지 사용될 예정이고 이후부터는 더 업그레이드 된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GBSD가 미니트맨Ⅲ를 대체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하게 된 아이와 성인의 싸움에서 어른이 손가락 하나 부러진다면 아이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김정은이 아무리 정치판의 어린애라 해도 이 정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 또한 전쟁을 하기 위한 것보다는 미국이라는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그에 따른 여러 이익을 얻고 싶어서였겠지만 그것을 위한 방법치고는 참으로 어리석을 뿐이다.   

우리는 핵전쟁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그 예기치 않은 죽음을 늘 외면하고 살고 있다.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게 되는 존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전쟁으로 죽는 것과 늙어서 죽는 것은 ‘나’의 입장에서 결론은 같지만 ‘나’의 외적 상황은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교과서적인 일반적 생각은 오래 살았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늘 말해왔다. 인류사 속의 현자들은 어떻게 살았느냐에 관련해서 ‘지금 여기’를 충일하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그 ‘지금 여기’는 스스로의 외부적 상황과 내면적 상황을 동시에 내포하는 것이니 ‘먹고 사는 일’과 함께 ‘누리고 사는 일’ 또한 동일한 삶의 무게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개인적인 ‘먹고 사는 일’에만 끌려 다니는 편이다.

작금의 한반도 전쟁위기는 죽음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의 삶의 현실적 문제다. 먹고살기에 바빠서 외면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과 동등한 무게의 인간답게 ‘누리고 사는 일’과 관련된 것이다. 모두가 원하는 평화 또한 그렇다. 그리고 이 평화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바로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나의 탓보다는 너의 탓, 누구의 탓, 전체의 탓, 나라의 탓, 어느 무엇의 탓 등 나 외의 어떤 사람, 어떤 것, 어떤 상황의 탓이라고 하는데 너무 익숙하다. 그것은 아마도 자본의 세월을 살며 생긴 고정관념의 하나인 ‘이익과 손해’라는 삶의 방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은 이미 나와 연계되어 있는 일이고 본질적 인식으로는 나의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10월 17일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진행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명상집회는 주목할 만하다. 현재 한반도 평화는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앞서 우리가,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모인 집회이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의 촛불집회가 그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