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호수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고 호수공원을 가로질러 가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점점 빗방울이 굵어져 공원 벤치 위에 지붕이 덮여 있는 곳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고 있는데, 하얀 개 한 마리를 품에 안은 아저씨가 들어와서 앉는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둘 만 있는 게 어색하여 난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조금 있으니 하모니카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어렸을 때 많이 불렀던 ‘이슬비’, ‘구슬비’, ‘자전거’, ‘반달’, ‘나뭇잎 배’와 같은 동요를 하모니카로 들으니 불편하던 마음이 일순간 환해진다. 옆자리 아저씨가 부는 하모니카다.

“하모니카 소리가 빗소리와 어우러져 무척 듣기 좋은데요.”

“마음속으로 노래를 느끼는 분이 있지요. 내 감정을 음악에 실었는데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해요.”

아저씨가 내가 처녀 적 좋아했던 노래가 뭐냐고 해서 ‘아침이슬’을 청했다. 하모니카 반주가 나오니 저절로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된다. 이어 ‘Sound of Silence’를 신청했더니 이 곡은 잘 못한다고 하며, 대신 ‘Top of the World’를 들려주었다.

지금은 하모니카로 수 천곡을 연주할 수 있다는 아저씨가 하모니카를 즐겨 불게 된 사연을 풀어 놓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사고로 검지 손가락이 잘렸는데, 감나무에 올라가서 하모니카를 불며 마음을 달랬어요. 어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며 술을 많이 마셨지요 10년 전부터 술을 끊으니까 할 일이 없어 뭘 할까 고민을 하다가 마침 초등학교 때 하모니카 소리가 좋았던 기억이 나서 혼자 8년간 악보도 없이 독학으로 익혔어요.”
 

▲ “마음속으로 노래를 느끼는 분이 있지요. 내 감정을 음악에 실었는데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해요.”


혼자 하모니카를 익히다보니 새로운 음을 만들어 불다보면 슬픈 감정이 더 실리기도 하는데, 마이너(minor) 하모니카가 있다는 걸 온라인 카페에 들어가서 처음 알게 되었단다. 마이너 멜로디(단조의 가락)를 잘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하모니카가 마이너 하모니카이다. 

아저씨가 ‘눈물 젖은 두만강’을 동요 연주를 하던 하모니카로 불러줄 때와 마이너 하모니카로 연주할 때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마이너 하모니카로 연주를 하니 ‘눈물 젖은 두만강’이 몇 곱절 더 애달프게 느껴진다. ‘눈물 젖은 두만강’에 얽힌 사연이 얼마나 애절하면 이런 곡조가 나올까.

한때는 회원이 2만 명이 넘는 하모니카 동호회 카페에서 운영자로 활동을 하였고, 몇 년 동안 주말이면 순천만 정원에서 재능기부 연주도 하였다고 한다. 요즘도 일 끝나고 집에 가서 저녁밥을 먹은 후 14년간 함께 지낸 개를 데리고 공원에 나와서 하모니카 연주를 하면 사람들이 들으면서 지나가는데,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해주면 좋겠단다.

그날 투닥투닥 내리는 빗소리에 아저씨의 감정이 더 고조되어서인지, 듣는 내 마음이 고취되어서인지 ‘얼굴’, ‘눈물 젖은 두만강’, ‘봄날은 간다’와 같은 노래가 하모니카 소리에 실려 한결 슬프고 구성지게 들려왔다.

“집사람이 즐거운 노래 좀 부르라고 하는데 즐거운 노래가 안 나와요. 그러다보니 처지는 음악과 슬픈 노래를 하게 되거든요.”

하모니카는 음색이 가냘퍼서 더욱더 마음을 울리니 향수의 악기이며, 또 유일하게 들숨과 날숨으로 부는 악기여서 심폐기능이 좋아진다고 덧붙인다. 

하모니카 연주 사이사이에 아저씨의 사연을 듣다 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비를 피해 들어간 피난처에서 즉석 토크 콘서트가 열릴 줄이야. 장르를 넘나드는 하모니카 연주도 아름다웠지만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듣는 하모니카 소리는 한층 더 심금을 울렸다.


[조합원 동아리 소개]
글로 삶을 나누는 … '생활글쓰기 모임'

▲ 8월 23일, 교육공간 '너머'에서 글쓰기모임을 마치면서 'MBC총파업 지지' 인증샷!


▸ 6월 17일 세 사람이 첫 모임을 시작했습니다.(임경환, 박미라, 김연희)

▸ 생활하면서 느낀 것을 글(생활글, 시)로 써 와서 나누고 있습니다. 
  글쓰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시간에 쫓기면 맛깔스런 ‘수다’로 생활을 나누기도 합니다.

▸ 글쓰기 관련 책을 읽기도 하고, 읽었던 책 중에서 인상 깊은 글귀를 나누기도 하고, 
  매 모임마다 먹거리를 나누기도 합니다.

▸ 모임에서 나눈 글들을 순천광장신문에 싣기도 합니다.

▸ 다섯명(임경환, 박미라, 김연희, 김현주, 이영국)으로 불어난 ‘생활글쓰기’ 모임은 
   9월 6일, 순천만 갈대밭으로 소풍을 가서 가을바람을 마주했습니다.
 

▲ 9월 6일, 순천만 갈대밭에서 노닐다가, 멋진 정자에 앉아 2주간의 삶을 동화책의 그림으로 나누는 시간


▸ 언제든지 누구든지 오세요! 2주에 한번 모입니다.
▸ 모    임 : 9월 20일(수) 오전 10시 30분
▸ 장    소 : 교육공간 ‘너머’(순천시 정충사길 36-1)
▸ 문    의 : 차차 010-6421-4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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