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소비중독 바이러스 어플루엔자, 존드그라프 외 공저, 박웅희 옮김(2010. 나무처럼)

“우리는 직장에 나가려고 옷을 사 입고, 아직도 할부가 끝나지 않은 차를 몰고 막힌 도로를 비집으며 출근한다. 이 모든 것이 옷과 차, 그리고 온종일 비워둘 집을 장만하면서 생긴 빚을 갚기 위해서이다. 요즘은 이런 생활이 정상이다.”

1997년 미국에서 TV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2001년에 책으로 출간된 ‘소비중독 바이러스 Affluenza’에 나오는 말이다. 어플루엔자는 ‘풍요로운’이라는 어플루엔트(Affluent)와 ‘유행성 독감’인 인플루엔자(Influenza)의 합성어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고통스럽고 전염성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전파되는 병으로,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태도에서 비롯하며 과중한 업무, 빚, 근심, 낭비 등의 증상을 수반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어플루엔자의 병후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삶에 대한 무력감, 과도한 스트레스, 많은 것을 소유했으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갈망, 쇼핑중독, 만성울혈 등등. 그리고 이런 개인적인 문제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상처와 전 지구적 문제군을 포함한다.

1990년대 말 기록적인 호황 속에 미국은 그야말로 물질이 넘쳐났다. 대형쇼핑몰, 인터넷쇼핑, TV쇼핑을 통해 ‘더 많이 소비하라. 그리하면 행복할 것이다’, ‘많이 살수록 이익이다’, ‘물건도 사고, 돈도 번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소비의 역설이 넘쳐났다.

Good Life는 Goods Life, 즉 좋은 생활은 상품 생활이고, 어느 누구도 잠시도 상업광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광고를 보는 것도 부족하여 내가 바로 광고판이 되어 서로를 감염시킨다. 결국 소비는 또 다른 소비를 낳고, 인간 스스로가 ‘소비’의 도구와 대상이 되어 살아가게 된 것이다. 심지어 죽어서도 소비는 계속되지 않던가. 장례문화라 이름 붙여졌으나 실은 장례 관련 소비에 다름 아니다. 2001년 쇼핑시즌에 판매세를 면제해주는 “Lets Go Shopping” 법안이 발의될 정도였으니 그 사회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한 해 동안 미국의 평균적 중산층 한 가구의 연간 수요를 위해 1814톤의 물질을 캐고, 퍼올리고, 옮기고, 변형하고, 태우고, 처분한다고 한다. 향기롭고 맛있는 커피에 취해 우아한 표정을 짓는 사람은 그 커피 농장에서 살충제가 뿌려지고 그로 인해 사라져가는 곤충과 새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이익은 제품을 팔거나 쓰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반면 그 대가는 인류 전체가 치러야 한다.

인간이 만든 물건의 종류와 자연이 만든 생물의 종, 어느 것이 더 많을까? 최근에 드디어 인간 창조자가 승리하기 시작했단다. 인간이 물건을 만들수록 생물의 종은 줄어든다는 사실, 이 책을 통해 새삼스럽게 알 수 있다. 벌써 오래전 시작된 마구잡이 소비쓰나미는 지금도 진행 중이며, 또 너무도 익숙한 우리의 현재 모습이라는 것이고, 앞으로 우리보다 후발 국가들에서 순차적으로 일어날 일이라 한다면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이 책은 이런 현상의 해결책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핵심은 이것이다. 우리 삶을 다운그레이드하자는 것이 아니고 삶의 방향을 수정하자는 것이다.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쓰자가 아니고, 더 적게 일하고 덜 쓰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가를 자연 속에서 누리며 가족과 이웃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갖자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상품과 유비쿼터스로 접속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바로 옆사람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 물건이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마음 허전한 것을 메우려 습관적으로 물건을 사는 것을 그만두고, 당장 욕구와 필요를 줄이는 것으로 시작하자는 것이다.

조선에 이만수라는 사람이 자신의 서재를 ‘서소(書巢)’라 이름 하였다 한다. ‘소’란 사람들이 ‘집’이라는 것을 만들기 전 새둥우리 같은 허름한 거처를 뜻하는 말이다. 주택이 만들어지면서 음란한 기예가 흥성하게 되었고 결국 올바른 도를 실천하지 않고 올바른 학문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식이 족하면 예가 사라지는 것이다.

한계효용은 체감한다는 법칙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욕망은 결코 채워질 수도 없고, 채워져서도 안 된다. 욕망에서 해방되고 참된 행복으로 가는 길은 이해하고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책, ‘어플루엔자’. 꼭 ‘사서’ 읽고 반성하시라.

방윤식
순천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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