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학섭 
    대대교회 목사

짐 콜린스의 책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가 한 때 서점가를 점령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은 6천명과 인터뷰한 내용을 근거하여 위대한 기업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일종의 보고서다. 갑자기 이 책을 서두에 꺼내는 이유는 최근 대통령과 면담을 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업인 중에 규모는 작지만 착한기업으로 소문난 오뚜기 식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오뚜기 식품이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걸까? 단순히 대통령으로부터 파격적인 초대를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전부터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진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오뚜기는 3천99명의 전체직원 중 비정규직은 36명에 불과할 정도로 비정규직 문제를 일찌감치 해소한 모범기업이다. 이는 고 함태호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현 함영준 회장도 부친의 경영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예를 들자면 상속세 1천5억 원을 정직하게 납부한 일, 심장병 어린이 4472명의 생명을 살리는 일, 저소득층 및 장애인 자립을 위해 300억 원을 기부한 일, 10년 넘게 라면 값을 동결한 일, 아무리 어려워도 협력업체의 물품을 제값을 쳐줌으로 중소기업과 상생의 모범을 보여준 일 등이다.

착한 기업이 된다는 것은 단지 현학적인 이론이 아니다. 혁신적인 경영기법이나 기업전략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또 상품을 팔아 많은 수익을 창출해 낸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직한 경영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없다면 역시 잘한 일이 아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정직한 윤리경영을 착한 기업이 되는 지름길이다. 시간을 두고 신뢰를 쌓아 가면 반드시 소비자와 회사원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그러면 기업의 수익은 저절로 많아지게 된다. 바로 오뚜기 식품이 그 좋은 선례다. 오뚜기의 착한 경영을 알아주는 많은 소비자들이 오뚜기 식품 구매운동을 해줌으로써 지난해에 처음으로 매출액 2조원을 달성했고, 최근 오뚜기 주식이 88만4000원까지 오르기도 했는데 전일 종가와 비교하면 13만9000원이 상승한 가격이다. 이제 대통령까지 나서서 오뚜기로부터 상생협력과 일자리 창출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가?

착한 기업이 된다는 것은 기업의 규모나 매출액이 아니라, 소비자와 직원들에게 만족감을 줄 때 따라오는 명예다. 모든 기업들이 오뚜기와 같은 기업이념을 갖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는 소비자와 직원만을 위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기업도 착한 경영을 해야 지속가능한 회사로 남을 수 있다. 본래 기업이란 기업주보다 소비자와 회사원 중심이어야 한다. 기업은 일자리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의 가정이 서게 하고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서도록 해주는 착한 기능을 가졌다. 또 기업은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어 여러 사람들에게 제공하여 혜택을 나누는 공익적인 역할도 포함한다. 기업 경영자들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회사로부터 일자리를 제공 받은 일꾼들 역시 착한 회사원이 되어야 한다. 단순한 돈벌이만을 위한 자리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하여 당시 성직자들에만 적용되던 소명을 세속 직업까지 확장하였다. 루터의 직업 소명론은 교회의 담을 넘어 일반 사회에까지 적용할 가치가 충분하다. 직업은 단순히 자기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며 사랑을 실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내게 주어진 직업으로 이웃을 섬기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성직이 되고 경제적 활동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직업이 다 성스러운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일이 이웃사랑에 배치되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해로움을 끼치는 일터는 거룩한 일이라 할 수 없다. 직업은 반드시 이웃에게 유익함이 되어야 함을 전제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일터를 이해할 때 더 급진적인 생각을 했다. 당시 노예 제도가 허용되던 때에 주인들의 횡포가 무척 심했지만 주인이 시킨 일을 할 때에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이 하라’고 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노예들이 참 많았을 것인데 노예들이 겪는 아픔의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먼저 일을 맡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것처럼 성실함으로 일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꾼들에게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주인들에게도 종들을 혹독하게 다루지 않도록 그들보다 더 높으신 심판자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하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였다. 실제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노예의 주인 빌레몬은 돈 가지고 도망친 그의 종 오네시모를 향해 두 팔을 내밀어 형제로 받아주었다.

회사원은 기업주를 향해 내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 내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해주었음을 감사하며 성실함으로 일하고, 기업주는 회사원을 내 가족처럼 따뜻함으로 대우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꿈이 현실이 되게 하려면 기업가는 기업가대로 회사원은 회사원대로 각자의 몫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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