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준.  소설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교육 개혁을 내세운 5·9 대선 후보자에 의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진 건 사실이다. 이세돌과 인공지능과의 바둑 대결은 기계화된 지능에 의해 인간이 지배받을 수 있다는 예감에 전율할 정도였다.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는 현실화되었다.

경향신문 주최 ‘4차 산업혁명-새로운 기회, 새로운 도전’이라는 경향 포럼(6월 28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 테슬라의 최고기술책임자인 J B 스트라우벨은 ‘석유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한다. 그는 획기적인 동력 체계의 변화로 새로운 경제 현실이 코앞에 와 있음을 강조했다. 6월 29일 자, 주요 일간지에 실린 현대자동차의 전면광고는 이를 웅변하고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율주행 자동차가 우리 가족을 데리고 왔다’는 ‘2035년 5월 24일 서동민의 일기’는 오늘의 시대를 읽고 있는 예감의 반영이다. 18년 뒤다. 

가장 확실한 또 하나의 징후는 석윳값 추락이다. 현재의 하락 원인은 산유국의 감산 합의 파기에 따른 증산과 미국의 셰일 오일 양산도 작용하고 있지만, 근본적 이유는 딴 데 있다. 석유 시대의 조기 마감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이 작동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중동의 산유국들은 새로운 동력 체계로 진입하기 이전에 최대한의 원유 수출로 최대한의 자본을 확보하여 새로운 경제 모형으로의 이동을 절박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 또한 경제성의 손익분기점이라는 배럴 당 40달러 이하로 떨어지기 전에 셰일 오일을 최대한 팔아보자며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전면 도래를 대체로 2030년대로 전망하는 듯하다. 13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에 이를 대비하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우리의 젊은 세대들에겐 미래가 없다, 할 것이다. 교육은 한편으론 미래에 대한 투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오늘의 교육 투자는 외면받게 된다. 학교, 즉 제도화된 교육을 통하지 않고 미래를 열어보겠다는 의지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현재와 같은 학교는 문 닫아야 한다. 우리의 교육 체계를 13년 이내에 바꿀 수 있는 혁신, 아니 혁명이 가능할까?

국가 단위에서부터 광역 단위의 시·도교육청 그리고 일선 학교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어떠한 교육 기획이 있었다는 전언을 듣지 못했다. 나의 과문을 탓해야지만,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인간상 견인을 위해 감성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수준이다. 6월 29일 자 경향신문을 통해 확인한 경향 포럼의 주된 의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사람과 경제’와의 관계 그리고 그 사회의 정체성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였다. 

이는 필연적으로 교육의 문제다. 교육을 통하지 않고 새로운 인간상 구현은 현재의 국가 체제로는 가능하지 않다. 문제는, 국가의 교육 체계를 바꾸는 데 13년은 절대 넉넉하지 않다는 데 있다. 교육과정 수립, 교과서 편제와 제작, 학제 개편 등은 그나마 지엽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교과서를 국정 역사교과서 만들 듯 뚝딱 꾸려낼 수는 없다. 급조한 교과서를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현장 교사는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교사 양성 체계의 변화는 우리나라 최대의 이익집단인 대학의 변혁까지 연동되어 있다. 기존의 교사들에게는 어떤 연수 과정을 통해 새로운 교육 체계에 융합하는 교사로 거듭나게 할 것인가? 여기까지 이르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국가적 준비는 현시점에서 제로에 가깝다,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교육위원회를 두고 이를 준비하려고 하고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통일 대비 교과서까지 논의하려 하고 있다니, 새삼 세상이 바뀌었다는 실감이 확연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더불어 통일 대비 혹은 통일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의 젊은이들이 국가가 준비하는 새로운 교육 체계 속에서 자신의 아름다운 삶을 일궈낼 수 있도록 국가가 최선을 다해야 그게 ‘나라다운 나라’이지 않을까?

교육혁명,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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