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의 전설

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배 바위는 조계산의 정상인 장군봉에서 남쪽 능선으로 약 100m 아래에 있는 둘레가 약 70m 높이 15m가 넘는, 조계산에서는 보기 드물게 솟아 있는 바위이다. 

조계산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장군봉이나 효령봉(연산봉)보다도 장밭골, 굴맥이(굴목재)와 함께 가장 많이 부르는 대표적인 명칭 중의 하나다. 

배바위에 오르면 발밑이 아슬아슬하고 선암사와 상사호 줄기, 효령봉(연산봉)과 장밭골 등 멀고 가까운 경치가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하게 달려온다.

 

▲ 배바위에 오르는 등산객
     
 

배바위에는 선암(船岩)과 선암(仙巖)으로 구분되는 전설들이 있다. 

첫 번째 배바위(船岩)는 이 바위에 배를 묶었다는 유래에서 나온 이름이다.

“아득한 옛날 세상이 온통 물에 잠기는 어마어마한 홍수가 발생하자 사람들이 커다란 배를 이 바위에 묶어 몇 날 며칠을 견딘 끝에 홍수가 멈추고 물이 빠진 뒤에 살아났다.”

     
 

그러나 실은 전설보다도 더 신비로운 얘기가 전해온다.

1960년대 이전 조계산을 오르내리던 인근 마을의 어른들은 하나같이 배 바위에는 조개껍데기가 붙어 있다고들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리하여 배바위는 먼 옛날의 깊은 바닷속을 상상하는 신비로움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얼핏 성서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비슷하여 사람들이 빌어 만든 전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아마도 배바위의 전설은 사실일 것이라 믿고 싶다.

배바위에는 1960년대 중반까지 옛날 배를 묶었다고 하는 대형 둥근 철 고리가 앞(서)쪽 바닥에 문고리처럼 박혀 땅에 누워 있었으며 무게는 어린이가 힘들게 들어 올렸다 놓을 정도였고 이곳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 차례씩 들어보는 것이 일종의 놀이와 같았고 훗날 여기서 뽑아낸 쇠고리는 선암사의 대웅전 앞에 박아 놓았다고 들었다고 괴목 마을과 송광면 장안마을 노인들은 말하였으나 현재 선암사대웅전 축대 위 양쪽에 박혀있는 쇠고리는 야단법석 행사용으로 배바위 쇠고리와는 무관하여 확인되지 않았다.
 

▲ 배바위 남쪽 절벽

한편으로 이 고리는 배를 묶은 전설의 고리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맥을 끊기 위해 일제가 박은 철주의 일종이라고 설명하시는 분도 있었다.

두 번째 선암(仙巖) 즉 신선바위와 관련된 전설은 두 가지로 전해온다.

그중 하나는 옛날 신선들이 이 바위 위에서 바둑을 두었다 하여 신선바위(仙巖)라 불렸으며 이 바위 이름에서 ‘선암사’란 절의 명칭이 유래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숙종 때 호암 선사가 관세음보살을 보려고 이 바위 위에 올라가 백일기도를 드렸으나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지 않자, “내 정성이 부족하고 믿음이 약하여 관세음보살을 만나볼 수 없으니 이는 죽음만 같지 못하다.” 하고 바위 위에서 뛰어내리고 말았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천상에서 어떤 부인이 코끼리를 타고 내려와 보자기로 선사를 받아 다시 바위 위로 올리면서 “떨어지면 죽는 건데 어찌 무모한 짓을 하느냐?” 하고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호암 선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꿈같은 일인지라 깨달은 바가 있어 선암사에 원통전을 지어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절의 이름을 선암사라 하였다.”(『한국 민속 종합 보고서』)
더불어 장군(장군봉)의 인장(도장)이라 하여 “인장 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송광향지에 실려 있는‘배바구’(배바위) 전설”

“아득한 옛날 조계산의 아랫마을에는 착한 홀아비와 일곱 살 난 손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착하고 순진한 노인이었으나, 몹시 가난하여 항상 지게에다  손자를 얹어 동냥자루를 동여매고, 지고 다니며 동냥을 해서 먹고 살았다.  

그러나 절대로 공짜동냥은 하지 않고 반드시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해 주었다. 마당을 쓸어주거나 두엄을 내어 주인에게 은혜를 갚은 것이다.

어느 따스한 봄날 동냥을 해서 막 집에 들어와 마루에 걸터앉았는데, 탁발 중이 와서 시주를 호소하자 “가진 것이 없소. 오늘 동냥해온 겉보리가 저 자루에 있으니 그것이나마 시주하리다.” 하고는 스님의 바랑에 부어주었다. 스님은 하늘을 우러러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 나더니 “세상 사람들이 노인장만 같다면 무슨 재앙이 있으리오. 하고 중얼거리지 않는가?”

노인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스님에게 되잡아 물었다. 

“그 무슨 말씀이요?” 스님은 또 한숨을 쉬고 나서 나직이 말했다. 

“인심이 사나우니 하늘이 재앙을 내릴 것이요. 저 골짜기의 돌부처 코에서 피가 나오는 날 여기는 물바다가 될 것입니다. 노인장은 그날이 오면 배 바위까지 올라가 재앙을 피하시오.

“나무 관세음보살” 

말을 마치자 스님은 온 데 간 데가 없었다.

노인은 스님의 말을 그대로 믿고 어린 손자를 시켜 매일 아침 돌부처의 코에 피가 났는지 안 났는지를 살피게 했다. 3년을 그렇게 하니 마을 사람들은 노인이 노망해서 어린 손자를 고생시킨다고 쑥덕거렸다. 그런데 마을의 짓궂은 청년들이 이 노인을 골탕 먹일 양으로 나무를 해서 내려오다가 주먹으로 제 코를 쳐서 피를 돌부처의 코에다 발라놓았다. 

여느 때와 같이 새벽같이 달려간 손자가 그걸 보고 헐레벌떡 숨 가쁘게 달려와 “할아버지 큰일 났습니다, 코에 피가……” 하고 알리니 노인이 달려가 보았다. 과연 피가 가슴까지 흘러내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집집이 돌아다니며 “돌부처에 피가 났소. 재앙을 피해 산으로 갑시다!” 하며 호소를 하고 다녔지만, 도리어 주민들은 노망하더니 이제는 미쳤다고 몰아세우며 재수 없다고 내쫓아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노인은 손자와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점심때나 되었을까? 산비탈을 돌아가는데 저만큼 한 소녀가 바구니를 끼고 가는 것이 보였다. 노인은 뒤쫓아 앞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아이고 다리야. 인자는 괜찮겠지?”하고 주저앉았다. 노인은 그냥 지나쳐 몇 걸음을 걷다가 같이 가자고 하려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어느새 물이 소녀의 바구니 밑에까지 차오른 것이 아닌가? 

온 마을은 물에 잠겨 온 데 간 데가 없고 사람들이 떠내려가는 것도 보였다. 

“아가 어서 가자 물 차오른다.”

 

소녀는 울상이 되어 꼼짝도 못 했다. 소년이 소녀를 일으켜 세웠다. 셋이 커다란 바위에 올라 마을을 바라보니 집도 허우적거리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시퍼런 물만 출렁거렸다. 세 사람은 거기서 배를 띄워 살아났다고 하여 배바위라고 한다.”(진인호의 지명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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