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여수YMCA 사무총장

‘80년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잊힐까 두려워 꽉 부둥켜안고 있었던 5·18, 6.10을 이제 슬그머니 놔주어도 되지 않겠냐는 정서가 은은히 번지고 있어서 드는 느낌이다.

박관현, 표정두, 조성만, 박래전 열사, 그들의 이름이 국립 5·18묘역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입으로 일일이 불렸으니 이제 5·18의 원혼들이 편히 눈감을 수 있지 않을까.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의 군사독재 장기집권 음모에 맞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국본)을 결성 혁명적 투쟁 끝에 이뤄낸 대통령직선 헌법쟁취 6.10항쟁. 그 주역들로 채워진 민주 정부에서 30주년 기념식을 치르게 되었으니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물론 이러한 외형적 사실만으로 80년대가 잊혀도 될 만큼 진상규명이 다 되었거나 치유된 것은 아니다. 전두환은 여전히 거짓말과 변명으로 광주를 욕되게 하고 있고 그날의 피해자들은 아직도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노동, 농민, 학생, 종교계, 시민사회는 물론 평범한 직장인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와 호헌철폐와 대통령직선 민주 정부수립을 관철한 위대한 시민혁명 6.10항쟁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본래의 가치 대신 정치적 소모품으로 이용만 당해왔다.

6.10항쟁은 광주전남에서 타올라 전국으로 번져나간 투쟁으로 5·18 정신을 계승했다는 역사적 의미와 무게를 갖고 있다. 즉 5.18의 전국화, 광주공동체 정신의 보편적 의미를 승화했다는 점에서 5·18과 6.10은 80년대 한국현대사의 두 축으로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나아가 7, 8월 노동자 대투쟁의 촉발점이 되었으니 한국 현대 민주주의의 시원(始原)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5·18과 6.10의 의미 새김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금부터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당사자(?)들은 그 여느 때보다도 느긋해진 것 같다. 편안해진 것 같다. 그깟 진상규명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진데 너무 조급하게 채근할 것 없어서일까? 30주년 기념행사야 민주정부 수립한 것 자체가 기념이지 그 내용이야 어떠한들 괜찮아서일까?

속은 빈 데다 줄기도 여린 대나무가 하늘 닿을 듯이 커가는 것은 매듭 덕분이다. 일정한 성장을 하면 매듭을 지어 다시 더 자라날 출발점을 만드는 것이다.

유구히 발전하는 역사에도 이런 매듭이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정체되거나 퇴보하는 것 같지만 그 과정을 통해 과거를 정리하거나 청산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매듭이 있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한다거나 정반합 변증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사관이 있는 것이다.

이제 80년대가 그 한 매듭을 지으려는 것 같다는 역사적 느낌이 온다. 정점이었던 6.10항쟁이 30년 흘렀으니 그럴 때가 온 것도 같다. 절묘하게도 인간사 한 세대라 하는 30년이다. 지난겨울 온 나라를 밝힌 촛불은 ‘87년 체제’의 매듭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왕 지어지는 매듭이라면 잘 맺었으면 좋겠다. 5·18의 영령들도 잠드시기 전에 혹시 산 자가 미련해 살피지 못한 것은 없는지,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로 이어지는 독재 망령이 다시 준동하지 못하도록 법 제도를 야무지게 한다든지, 그날의 아픔으로 아직 고통받는 시대의 상처를 함께 감당하고 치유해가는 사회공동체복원과 같은 과제들이 그 매듭일 것이다.

30주년을 맞아 전국 지역 단위에서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준비되고 있다. 광주 금남로에서, 여수 교동 오거리에서, 그리고 그날을 잊지 못하는 민주시민들의 가슴 속에서…

박정희망령 박근혜 청산 없이 맞았다면 끔찍이도 참담했을 행사 분위기였으리니 긴 감회의 숨을 뱉으며 행사장을 누벼보리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호사도 누려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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