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지갑 안에는 신용카드가 몇 장이나 있나요? 자주 사용하는 것도 있지만 영영 세상 구경 한번 못해보는 녀석들도 있어요. 의미 없이 꽂혀있는 플라스틱 네모를 언제 누구에게 만들었나요? 쉽게 만들고 없앴을지도 모르는 이 카드 한 장이 누구에게는 시간과 땀일 수도 있어요. 그녀는 오늘 꼭 한 명의 고객을 만나야 하니까.

이름    : 이가연
사는 곳 : 순천시 조례동
직업    : 신용카드 모집원
 

올해 내 나이 마흔하나

울 엄마는 마흔한 살에 나를 낳으셨다. 제법 큰 경작지와 과수원을 가지고 있는 시골 부잣집 막내딸이었다. 내 위로 오빠와 여섯 언니가 있어서 자그마치 8남매가 있는 우리 집은 항상 북적거렸다. 농사일로 바빴던 부모님은 내가 잘 따르던 다섯째 언니가 입학하자 나를 묶어서 같이 학교에 보내셨다. 요샛말로 1+1학생이었다. 언니가 공부하는 책상 아래에서 혼자 놀고 졸리면 교실 바닥에서 잠이 들었고 도시락도 같이 먹었다. 나는 그렇게 9년 동안 초등학교에 다녔다. 내 기억 속에 언니들은 항상 옆에 있는 수호천사들이었다.

여섯 언니와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랐던 나의 세상에 다른 사람들은 없었다. 언니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차례로 도시에 나갈 때 무심한 척하던 엄마는 과수원에서 몰래 울곤 하셨다. 나는 그런 이별이 참 힘들었다. 하교 후 엄마가 안 보이면 나는 새끼오리처럼 꽥꽥 소리 지르며 엄마를 찾아 산으로 찾아가곤 했었다. 대학생이 되어 전주로 떠나는 날 기차에서 나는 다시 오리처럼 울었었다. 나는 그때 참 어렸던 것 같다.

 

▲  혼자 몸으로 평생 일만 하신 어머니. 엄마가 아프면 일곱 딸 중에서 가장 먼저 나를 불러주길 바랍니다.


칠 공주 농원

자식이 많으면 가끔은 속 시끄러운 일도 생길만한데 엄마는 지혜로운 분이시다. 손가락 열 개 중 어느 하나에 따로 마음을 주지 않는다. ‘내 손가락은 똑같이 예쁘고 똑같이 아프다.’라고 하신다. 생일이 돌아오면 여덟 자식에게 똑같이 금일봉 5만 원씩을 주신다. 마음이야 기울지도 모르지만 절대 내색을 하지 않으신다. 그 시절에는 아들이 귀했을 만한데도 아빠에게 내가 딸을 일곱이나 낳은 사람이라며 당당해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너희들 때문에 버틴다는 말을 자주 했었고 ‘칠 공주 농원’이라고 이름까지 지었다. 큰언니가 벌써 59살이다. 살림밖에 모르고 여리던 넷째 언니는 엄마처럼 혼자가 되었다. 미래란 예기치 못한 이야기를 항상 준비하는 것 같다.
 

▲ 광양시 진상면 - 칠 공주 농원각자 다른 직업이 있는 일곱 딸이 이른 봄에는 고로쇠, 초여름에는 매실, 가을에는 곶감 작업을 한다.

나는 왜 신용카드모집인이 되었을까?

내가 일을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남들처럼 생활일 뿐이다. 다만 내가 직업을 선택하는 데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는 아이의 등하교에 방해가 되지 않는 일, 둘째는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함께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아이가 빈집에 들어오지 않게 해주고 싶다. 출퇴근이 자유로운 일을 찾아 이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느슨하게 일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머문 자리에서 항상 열매가 맺는 것을 보고 싶다.
 

▲ 내가 하늘이 되어주고 싶은 아들

아침 10시면 사무실로 출근해서 오전 근무를 한다. 오후에는 5~7명 정도의 고객을 만나려 노력한다. 정해진 고객이 없으므로 새로운 고객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움직이는 일이 좋다. 가끔 대형 마트에서 작은 부스를 열고 고객을 찾기도 한다. 무슨 일이든 재미 붙이기 나름이다. 평생을 농사일로 8남매를 키우신 엄마를 생각하면 못할 일도 없다.
 

▲ 카드발급과 고객관리 업무
    매일 새로운 고객을 찾고 만나야 하는 일, 계약 후에는 고객관리까지 바쁘지만, 발로 뛰는 만큼 급여가 생기는 정직한 일이다.


지금 내 나이 마흔하나! 엄마는 마흔한 살에 나를 낳으셨다. 같은 나이가 되고 보니 엄마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엄마가 매실을 가꾸고 곶감을 엮어 우리를 키우셨듯이 조금 다른 모양의 열매일 뿐 나도 내 텃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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