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신경숙의‘엄마를 부탁해’

 
가을의 출입구에 서 있는 요즘 메마른 눈가를 촉촉이 적셔 주는 가슴 속까지 저리게 만드는 소설 한 권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으로 신경숙의 장편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다시 펼쳐 들었다. 사실 2008년 출간되자마자 구입하여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었던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내 돈을 주고 직접 구입한 책은 빨리 읽어야 한다는 절박함 대신 언제든 읽으면 된다는 지나친 심리적 여유 탓인지 미루고 미루다 해를 넘겨 읽는 경우가 많다. 이 책도 그랬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식의 다소 자극적이거나 군더더기 하나 없이 잘 깎아 놓은 대바늘처럼 번득이는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첫 문장이 인상적이긴 했다. ‘어린애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엄마를 잃어버리다니. 그 엄마 혹시 치매 걸린 것 아냐?’ 정도의 얄팍한 상상을 하며 책꽂이에 꽂아 두었을 뿐이다.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심지어 미국 최고의 인터넷서점 아마존닷컴에서조차 베스트셀러가 되어 팔리고 있는데도 나는 대중적 독서 열풍에 편승하고 싶지 않다는 어쭙잖은 핑계를 대며 애써 덮어두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자그마치 5년 만에 책을 장식한 띠가 사라지고 책장이 적당히 누렇게 된 그것을 먼지를 닦아가며 하룻밤 새 다 읽었다. 그것도 추석 연휴 중에 명절 음식 장만하느라 피곤으로 부은 몸을 달래가며 읽은 것이다. 두 눈이 퉁퉁 붓고 눈물을 훔치던 손바닥이 흥건하도록 몸과 마음을 온통 젖게 한 작품이다. 

 ‘엄마’라는 이름. 그것이 정작 엄마 자신에게 얼마나 부당하게 채워진 치명적인 수갑인지 태어나서 정말 처음으로 진지하게 깨달았다. 엄마는 그저 엄마인 줄 알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이고 부엌이야말로 엄마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유일한 공간이자 보금자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엄마를 공기 정도로 인식하는 나 같은 자식들, 다정한 말 한 마디 건네는 것조차 인색한 다수의 남편들, 억압과 희생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관습적 인식일 뿐이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이 아니었다. 엄마에게도 장밋빛 꿈을 꾸었던 소녀 시절이 있었고, 프릴 달린 예쁜 원피스를 입고 싶은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여자로서의 욕망이 있었으며, 가슴 떨리는 사랑을 향한 열정도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엄마가 여자라는 사실 아니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살아온 것이다.

▲ 신경숙
이 소설은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가 서울 지하철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치고 실종되어 그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엄마의 모습이 섬뜩할 만큼 생생히 재현됨은 물론 가족들이 몰랐던 엄마의 새로운 면모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반성하게 만든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작품을 거론할 때 꼭 한 마디 정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서술 시점의 독특함이다. 옴니버스 소설도 아닌데 시점이 1인칭, 3인칭을 넘어 2인칭이 구사되기도 했다. 제1장 ‘아무도 모른다’는 엄마를 잃어버린 주인공 ‘너(소설가)’의 시선으로 가족들과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엄마를 한 인간 아니 한 여자로 생각해 본다. 제2장 ‘미안하다, 형철아’는 큰아들의 시선으로 엄마의 실종을 체감하며 엄마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회한과 안타까움이 가슴 저리게 한다. 제3장 ‘나, 왔네’는 남편의 시선으로 자식들의 엄마이자 자신의 아내인 ‘박소녀’를 떠올리며 살아 온 시간과 현재의 빈자리를 절감하며 아내를 돌아본다. 제4장 ‘또 다른 여인’은 엄마의 시선으로 자식들과 남편을 이야기하고, 한 여자로서 마음속에 비밀처럼 숨겨둔 그 사람 이야기를 하며 작별인사를 한다. 가족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안타까움이 엄마의 입장에서 잘 표현되었다. ‘진뫼’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초경을 겪기 전 17살 때 얼굴도 모르는 남편과 결혼하여 3남 2녀를 낳고 자식들만 바라보며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엄마에게도 사실은 한 남자를 향한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숨어 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독자들은 충격 비슷한 것을 느낄 것이고 그와 동시에 가슴 한 구석에 싸하게 퍼지는 슬픈 여운을 감지할 것이다. 엄마도 엄마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사랑과 위로를 필요로 하는 한 여자였구나, 라는 사실 불편한 진실이지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에필로그 부분은 큰딸 ‘너’가 이탈리아 성베드로 광장의 피에타상 앞에서 차마 하지 못한 한 마디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고 눈물 흘리듯 갈구하며 끝난다.

9개월째 찾지 못한 그리운 엄마. 그 엄마를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낯선 이국땅에서 동상이나 붙잡고 ‘엄마를 부탁해’라고 한 마디 하는 것이다. 작품 속의 ‘너’는 작품 밖의 ‘나’, 이 소설을 읽으며 울고 있는 바로 ‘나’ 자신과 너무 닮아 있어 솔직히 불편하기도 하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끝내 인정해야 하고 이를 계기로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되어 눈물로 세월을 떠나보내는 친정엄마를 생각하며 ‘풍수지탄(風樹之嘆)’이라는 한자성어를 곱씹어 본다.

김혜련
순천여고 교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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