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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되어 훨훨 날고 싶습니다”영화‘어폴로지(The Apology)’를 보고나서
박미라 시민기자  |  webmaster@agora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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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호] 승인 2017.05.15  13: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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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최고령 이덕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현재 우리나라에는 서른아홉 분의 위안부 할머니가 생존해 계신다. 전남 승주에서 태어나신 일본군 위안부 백넙데기 할머니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영화 ‘어폴로지(The Apology)’를 순천시민과 함께 관람했다.

티파니 슝 감독이 6년을 걸쳐서 만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 중국의 차오할머니,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가 겪은 일을 토대로 만든 다큐멘터리다.

길원옥 할머니와 정대협 윤미향 대표님이 함께 ‘찔레꽃’을 부르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노래를 다 부르신 후에는 할머니는, “아~~~ 좋다. 역사가 ‘위안부’라고 낙인을 찍는다고 해도 우리는 할머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역사적 진실이 밝혀지길 원하신다.
 

   
▲ 길원옥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가 위안부에 관해 이야기를 하시고자 일본에 갔는데 일본 극우단체들은 할머니들을 향해서 “돌아가, 수치스러운 한국 할망구 꺼져, 창피한지도 모르고…” 등등 온갖 망발을 서슴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길원옥 할머니는 이에 굴하지 않고 “일본은 머리 숙여 사죄하라.”라며 고함으로 호통을 치신다.

길원옥 할머니는 1928년 평안북도 희천에서 태어나셨는데, 밤낮없이 구타와 고문, 감금에 시달리며 13살 어린 나이 때부터 위안부 생활을 했다. 그 생활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서 밤마다 “엄마, 엄마”하면서 울었다고 하신다.

“나비가 되어 날고 싶습니다. 늙은 몸이지만 훨훨 날아서 휴전선 가시덤불에 내 몸이 찢겨도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휴전선 너머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하던 13살 나이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라던 할머니는 마지막 말씀이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로 남는다.
 

   
▲ 차오 할머니

중국의 차오 할머니의 생생한 체험담이 계속됐다.

“일본군을 보고 산속으로 피신했어. 또래 여자아이들 4명을 일본 놈들이 끌고 갔어.”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딸을 구하려다가 일본군들에게 두들겨 맞아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 그 충격으로 정신이 나가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가 이어졌고 일본군에게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됐으며 위안소 벌판에서 낳은 딸과 아들을 목을 졸라 죽였다고 말씀하시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혔다.

그 이후 차오 할머니는, 53세 때 딸 한 명을 입양해서 길렀고, 그 딸이 지금은 차오 할머니 뒷바라지를 해주는데,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제대로 이야기 한 적이 없다고 하신다. 그저 가슴속 깊이 상처만 묻고 살았다고 한다.
 

   
▲ 아델라 할머니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는 1942년 14살 때 일본군에게 끌려가서 위안부 생활을 하셨는데, 일본군 병사가 발로 배를 차서 피를 많이 흘리고 3개월 동안 갇혀 있으면서 성폭행을 당한 게 아주 고통이었다고 한다.

필리핀으로 돌아가서는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하고 엄마에게만 알렸다고 한다. 그 후 결혼을 했는데 가족들은 물론 죽은 남편한테도 얘기하지 못했단다.

“한없이 다정한 남편이지만 혹시나 내가 이야기를 하면 남편이 싫어하고 버리지 않을까 두려워서… 날 두고 떠날까 봐서”. 

지금까지 그 사실을 숨기고 속인 것이 죄책감이 들면서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고 했다.
“이게 내 인생이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다. 심장 깊숙이 박힌 못을 빼고 싶어. 터놓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아. 그것도 10킬로는 가벼울 것 같아”라고 이야기를 이어가시던 아델라 할머니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여보 미안해, 내가 말을 하면 당신이 나를 떠날까 봐서 이야기를 못 했어”라며 죽은 남편의 묘지에 가서 숨겼던 사실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을 듯하다.
아델라 할머니는 한국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수요 집회를 방송으로 보시고 “오래오래 살아서 한국에서 만나요.”라고 말씀하셨는데, 2014년 정대협에서 아델라 할머니에게 수요 집회에 참석해 달라고 초청장을 보냈지만, 오시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사람으로, 여자로 태어나서 귀한 딸로 귀한 집으로 시집가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소박한 마음을 내비치시던 길원옥 할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온 마음으로 바라며, 이제 할머니들도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시면 좋겠다. 일본의 사죄가 현실이 될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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