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용창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주인공 김민우와 함께 인도 요가 스승들의 답을 들어 볼까요?


네팔 카트만두에서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척추 장애 재활 센터였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허리를 다치면 허리 안에 들어 있는 척수 신경이 끊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신경이 끊어지면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 된다. 이 곳은 그런 척추 장애인들이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도록 돕는 곳이었다. 의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와서 보고, 주로 물리치료사들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김민우는 이곳에서 환자들에게 안마를 하고 요가를 가르쳤다. 환자들은 그의 안마를 감사히 받았고, 요가 아사나 교육도 잘 따라 주었다. 신경이 끊어진 위치에 따라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가 달랐기 때문에, 환자마다 따라할 수 있는 요가 동작이 달랐다.

김민우는 각각의 환자들과 함께 각각의 환자들을 위한 요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척추 장애인들은 적절한 운동을 하기가 비장애인들보다 더 어렵기 때문에 비만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비만은 또 다른 질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서 척추 장애인들은 자신의 몸 상태에 맞는 운동 프로그램을 개발해준 김민우를 매우 고맙게 여겼다.

또한 비록 척수 신경이 끊어져 다리 쪽에는 아무 감각이 없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안마가 필요했다. 안마가 혈액순환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김민우는 사람들을 이렇게 직접 도울 때 에너지가 샘 솟는 것을 느꼈다. 남문통 현대철학관의 점쟁이가 말한 칼이 이렇게 잘 쓰이는 거라고 그는 해석했다.

척추 장애 재활 센터에서 도와주는 재활에는 육체적인 것도 있었지만, 정신적인 것도 있었다. 이 센터에 오는 환자들은 거의 모두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었다. 원래는 두 다리 멀쩡하게 뛰어다니던 사람들이 사고 때문에 하루 아침에 장애인이 되어 걸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충격이 엄청나기 때문에,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자신의 새로운 몸-다리를 쓸 수 없는 몸-을 수용하고 적응하는 것, 그 사고를 당한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환자 중에 셰르파 족 남자, 양둥 라마가 있었다. 김민우와 같은 서른 살, 1975년생인 그는 다섯 살짜리 딸이 집에 있었고, 아버지의 간호를 받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전통 의약품을 채취하고 판매하는 일종의 의사였지만 불행하게도 사고를 겪었다. 휠체어를 타고 집 주변을 다닐 수는 있지만, 히말라야의 산맥을 누비며 약초를 캐는 일을 다시 하기는 힘들었다. 정규학교를 다닌 적이 없지만, 그는 히말라야 등산객들로부터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워 능숙하게 말하였다. 그가 김민우에게 물었다. “요가를 하면 저의 끊어진 척추 신경이 다시 붙을 수도 있을까요?” 김민우는 순간 당황했다. 그가 사진으로 보여줬던 다섯 살짜리 딸의 얼굴과, 그가 사는 히말라야 마을의 푸른 하늘이 눈 앞을 스쳤다. 김민우는 답했다. “가능합니다...하지만, 그 일이 벌어진다면 사람들은 그걸 기적이라고 부를 겁니다.” 그 날밤 김민우는 별을 보면서 울었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그의 마음은, 남문통의 점쟁이가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삶의 방향을 결정한 중요한 에너지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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