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식
    순천소방서 소방관

산과 들녘에 형형색색의 꽃이 피는 계절이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들녘에 흰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오는 여유로운 광경이었다. 그것은 논두렁 태우기로, 초등학생이던 우리에게는 개학을 알리는 신호였고, 부모님들께는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예전의 논두렁 태우기는 겨우내 잠들어 있던 해충을 없애고, 한해의 풍년을 기리는 행사였다.

어릴 때의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는 논두렁 태우기가 요즘은 큰 걱정거리가 되었다. 추위가 어느 정도 가신 삼월부터 급격하게 증가하는 산불 때문이다. 농사를 마치고 남은 마른 농작물을 소각하거나 논두렁이나 밭두렁을 태워서 논밭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퇴비를 하여 한해의 농사를 시작하려는 것인데, 실수로 야산으로 불이 번져 산불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산불이 발생하는 것도 큰 재앙인데, 산불을 진압하는 과정에 화상을 입거나 심지어는 사망하는 일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

지금 우리의 농어촌은 50대 이하의 연령층은 없고, 70대 이상의 노인이 주로 거주하는 인구구조를 보이고 있다. 즉, 고령사회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의미이다. 과거에 했던 행위를 무한 답습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 있다.

거의 매일 마을 방송에서 논두렁 태우기를 금지하고, 건조한 날씨에 산불 발생 위험을 알리고, 심지어 산불이 발생했을 때의 피해 보상이나 과태료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또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자동차와 항공기를 이용한 산불예방 홍보를 실시하고, 소방서에서도 소방차를 이용하여 주기적으로 순찰을 하며 예방활동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불은 줄어들지 않고 발생한다.

최근에도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인근 지방자치단체에서 논두렁 태우기를 하던 노인이 야산으로 번지는 불길을 잡기 위해 불을 끄려다가 화상을 심하게 입어 병원으로 이송 하였다는 것이다. 우리집도 걱정이 되어 시골에서 생활하는 모친에게 안부전화를 한 다음에야 가슴을 쓸어 내렸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이다.

농촌진흥청의 안내문이다. ‘논·밭두렁 태우기를 하면 애멸구·벼물바구미·끝동매미충 등을 일으키는 해충류는 11%가 방제되지만 거미·톡톡이 등 농사에 도움을 주는 천적 곤충류는 89%나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청의 지난 10년 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3935건으로 연평균 394건인데, 주로 3∼5월에 50% 이상이 일어났다. 산불의 원인은 입산자의 실화가 38%로 가장 높고, 논·밭두렁과 쓰레기 소각이 31%, 담뱃불 등 기타가 31% 순으로 나타났다.(서울경제, 2017.03.16. 봄철 논밭두렁 태우기 득보다 실이 크다)’

최근 근무 중에 어느 시골마을의 야산에 산불이 발생했다는 출동명령이 내려왔다. 오후 5시경 출동지령에 따라 현장으로 갔는데, 산불은 밭두렁에서 출발해서 야산 마른 풀밭으로 진행 중이었다. 소방차가 가까이 갈 수 없어 소방호스(1개당 최대 15m) 10개를 연결하여 겨우 진압할 수 있었다. 조금만 지체했다면 큰 산불로 이어질 상황이었다.

산불이 나면 누구라도 먼저 발견한 사람이 불을 꺼야 한다. 일반 화재사고를 소방서에서 담당하는 것과 달리 산불화재 진압은 산림청과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이다. 소방서의 화재진압차량은 5톤 이상의 화물트럭으로 농로나 임로에 진입하기가 어렵고, 소방호스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다. 산불이 산 중턱에서 발생하면 소방차로 화재를 진압할 수가 없다. 산불에는 소화약제가 들어 있는 등짐펌프를 가지고 현장에 들어가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한 인력과 장비 등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그래서 소방서는 산불진압 현장에서 필요한 소방용수를 보충할 때 소방차를 지원하는 정도이다. 산불이 큰 경우에는 항공기(헬기)로 불을 끄기도 한다.

해충을 없애고, 한 해의 풍년을 기리는 논두렁 태우기는 이제는 과거의 추억으로 남기고, 산불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논두렁 태우기를 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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