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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조계산 조계봉(曹溪峯)
김배선  |  webmaster@agora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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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 승인 2017.02.11  12: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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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 김배선 향토사학자

조계봉(曹溪峯)은 송광사의 남쪽에 솟아 있는 봉우리의 이름이다. 조계봉의 다른 이름은 제짜봉(帝字峯)이라고도 한다.

조계산 송광사 대웅전의 방향이 정남(正南)에서 약 20°가량 서쪽으로 향해 있으므로 대웅전 앞에 서면 조계봉은 약간 왼쪽방향으로 보인다. 조계봉이 묵직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산세가 우람한 것도 있지만 봉우리에서 절을 향하는 골짜기의 형태가 가파르고 눈앞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송광사 터를 형성하고 있는 산세를 따라가며 위치를 살펴보면, 효령봉(연산봉)에서 남쪽을 향해 뻗어 내리는 청룡(좌)줄기가 굴맥이(굴목재)에 길을 내고 다시 솟아 천자암 뒤편의 742고지를 빚어 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송광사 터의 큰 담장을 이루기 위해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건너편 백호 줄기와 나란히 동행하며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 냈다.

계속해서 서서히 허리를 낮춰 약 2.5km 지점에 송광사와 배 골(이읍) 마을로 통하는(낙안과 고흥으로 연결됨) 운구재를 트고, 다시 힘을 주어 한 구비 왼쪽으로 꺾어 돌며 약 300m를 올라 줄기가 나뉘는 삼거리 형태의 봉우리가 조계봉이다.

왼쪽으로 굽어 돌아 내려가는 줄기가 민재(蚊峙)(외송⇔산척 고개)와 장정지 몬당으로 뻗어가는 청룡의 본줄기이고, 조계봉에서 송광사를 향해서 가파르게 세 줄기를 내려 보내 커다란 두 개의 골짜기를 만들고 있다.

중앙으로 뻗어 내린 줄기가 화엄전을 등지고 일주문 앞에 머무르다 왼쪽(송광사에서 보면 우측)은 조계암 골이고, 오른쪽 골짜기는 별도의 이름이 없다. 
 

   
▲ 주차장에서 바라본 조계봉

운구재에서 내려오는 방향인 정면의 큰 줄기는 조계암 골과 시양골(西陽洞)의 경계를 이룬다.
청량각 앞에 머물러 망수봉에서 내려온 백호와 머리를 맞대 사자 목을 형성하여 송광사 터의 궁궐 안쪽 담장이 되어 기를 모아주는 내청룡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조계봉은 송광사의 터로 볼 때는 중요한 맥점의 봉우리이다.

‘조계봉’이라는 이름은 1886년에 제작한 조계산의 지도에 표기되어 있다. 조계봉의 또 다른 이름인 제자(‘짜’로 발음)봉(帝字峯)인데, 1900년 무렵의 상량문에 등장한다.

산 이름은 그 산 전체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 중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당연히 산을 상징한다. 백두산 정상을 백두봉이라 하지 않고, 한라산 정상을 한라봉이라 하지 않은 것처럼 산보다 항렬이 낮은 봉의 정상에는 그 봉우리의 품격에 맞는 다른 이름을 지어 불러 산명을 존중한다. 굳이 봉우리의 이름을 짓지 않아도 정상은 그 산의 이름을 상징하는 봉우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조계산의 정상인 장군봉이「조계」를 상징하고 있으므로 조계봉이라는 이름은 비워두는 것이 순리로 보이는데, 송광사 쪽에 있는 낮은 봉우리가 조계봉으로 불리게 된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선암사와 송광사(길상사)의 서로 다른 주산이었던 청량산과 송광산이 당시 우리나라 불교의 으뜸 단어였던 조계산으로 다시 태어나기는 했지만 조계(종)의 주인을 자처하는 송광사로서는 스스로의 상징인 ‘조계봉’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계산 이전에 조계봉이 명명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 감로암에서 바라본 조계봉

다음 제짜(帝字)의 의미이다. 帝는 임금, 하느님 또는 고대 중국의 다섯 성군을 이르는 오제의 준말이다. 字는 글자 또는‘ 아이를 배다, 기르다’라는 뜻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임금의 기를 품고 있는 봉우리’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조계봉(제짜봉)은 송광사 쪽 산세의 주요 봉우리들인 효령봉, 시루봉, 망수봉(국사봉)과 달리 인근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스님들 사이에서도 그 다지 불리지 않았던 터라 이름이 없는 봉우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중에도 아랫마을 어르신들은 제짜봉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조계봉과 제짜봉, 두 이름 사이의 상관관계를 알고 싶어 송광사 박물관장 고경스님을 찾았으나 기록에 나타난 이름 이외에는 알 수가 없었다.

제짜봉(조계봉)이 송광사 청룡줄기의 중요한 맥이고, 또 커다란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봉우리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위치(방위)와 형태에 있다고 본다. 스님들에 의해서 아무리 좋은 이름이 지어졌다 하더라도 알려지는 것은 주민들의 몫인데, 조계봉은 접근성이 떨어진다.

조계봉이 송광사를 향해 형성하고 있는 골짜기가 북향이어서 그늘지며 위로 갈수록 거칠고 가파르므로 주민들 삶의 터전으로 불러들이는 채실(菜實)의 빈곤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전혀 드나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봄이나 가을이면 산나물 채취를 위해 찾기는 해도 중 산간 이하에 그친다. 송광사 쪽에서 조계봉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드물고, 오히려 반대편의 산척이나 이읍마을에서 능선 길을 따라 통행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반증하듯 산척 사람들이 천자암으로 다니던 민재에서 조계봉까지의 능선 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길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게 되었고, 조계봉이 송광사를 향해 커다란 골짜기를 펼쳤음에도‘조계암‘과 ’판와암‘이라는 두개의 암자 터만 있을 뿐이다.

송광사에서 조계봉으로 직접 오르는 길은 비림 왼쪽(일주문 옆)에서 조계암 골을 향하다 오른쪽 비탈로 나 있는 길(과거 산척사람들이 송광사로 넘어 다니던 길)을 따라 오르다 내청룡 줄기를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통행이 끊겼고, 그나마 운구재에서 오르는 능선 길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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