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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조계산 시루봉(甑峰)과 연산봉
김배선  |  webmaster@agora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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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호] 승인 2017.02.04  16: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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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 김배선 향토사학자

시루봉(甑峰)

조계산에는 장군봉을 주봉으로 선암사 터를 형성하는 산세와 효령봉(연산봉)을 주봉으로 송광사 터를 형성하는 산세가 동서로 자리잡고 있다.

시루봉(790m)은 효령봉에서 시작하면 송광사의 오른쪽을 감싸고 내리는 백호줄기이지만 송광사가 백호를 등지고 앉아 있으므로 방위상으로는 송광사의 뒤에 있는 산봉우리다.

송광사 일주문 앞에서 볼 때 대웅전의 후방으로 보여야 하지만 너무 가까이서 보기 때문에 시루봉에서 내려와 대웅전의 뒤편에 낮게 멈춰 송광사 터를 만들고 있는 안산 ‘모개매미 등’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다송원 입구로 약 150m를 더 내려가야 꼭대기가 어렴 풋 눈에 들어온다.

장군봉에서 효령봉(연산봉)으로 이어지는 말발굽능선을 역으로 오르며 연산봉사거리를 지나 약 1km 지점(장박골 습지삼거리 약 80m)에서 서북방(좌측)으로 분기하여 송광사 오른쪽 약 400m 거리의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 산죽이 키를 덮는 능선 길을 꺾어 오르면 건설부 구례지소에서 설치한 꼭지점 표지석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이곳 삼거리에서 왼(서)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피아골과 보조암골 상단을 경계로 내려가다가 예비군 헬기장(터)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왼쪽은 홍골과 모개배미골(십장골)을 가르는 줄기로서 비룡폭포 다리로 내려간다. 오른쪽은 모개배미골과 보조암골(동암골)을 경계로 가르며 내리 뻗어 송광사 뒤편 모개배미 등에 이르러 송광사 터를 향해 좌우로 다소곳이 팔을 벌리며 줄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혹자는 이곳을 시루봉이라 하기도 하지만 주민들에게 확인한 결과는 다르다. 모두가 꼭지점 표석봉으로부터 북(오른쪽)방으로 100m 가량을 내려간 지점에 뾰족하게 솟아 오른쪽의 내리막 줄기는 ‘오두재’와 ‘등계봉’으로 이어진다. 지금도 가끔 등산객이 통행하는데, 왼쪽이 ‘관재’와 ‘망수봉’으로 뻗어 내리는 송광사의 백호줄기로 Y자형 삼거리인 이곳을 시루봉이라 부르고 있다. 앞서 시루봉을 송광사의 배후 산봉우리라고 했으나 거의 동일한 방위에서도 표석봉이 좀 더 정 후방에 해당하여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조계산 서쪽의 지형을 실질적으로 아우르는 이곳을 시루봉이라 한다.
 

   
▲ 조계산 시루봉

시루봉이 형성하고 있는 능선과 계곡자락을 살펴보면 송광사뿐만 아니라 송광사의 오른쪽(시루봉에서 보아)으로 나란히 펼쳐진 백호줄기 안쪽의 큰 골짜기에는 보조암골, 남암골, 서부대골 등 작은 골짜기로 나뉜다. 수많은 혈터를 제공하여 보조암(본암)을 비롯하여 은적암, 광원암, 감로암 등 송광사의 주요 암자들 대부분(10개의 암자)이 자리를 잡았고, 백호줄기 외곽(右)의 큰 골짜기는 북암 터가 있어 절터 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신흥마을 사람들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이 되었다. 

다음 오두재(등계봉) 줄기 왼쪽(西) 큰 골짜기는 송광면 신흥마을 사람들이 ‘불바래기골’이라 하여 동쪽을 의미하는 불, 밝음, 해 또는 부처를 바라본다는 의미가 있다. 그 골짜기의 정상인 시루봉을 동편에 솟은 신성한 봉우리로 여겨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두재 능선 오른쪽(東)의 깊은 골짜기는 송광사에서 보면 시루봉 뒤편으로, 가까운 접치마을에서는 먼 골이라 부른다.

물론 접치마을 사람들이 드나드는 생활터전이었으며, 봉우리의 이름 또한 시루봉이 아닌 감투봉으로 부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시루봉이라는 이름은 『송광사고』(1012쪽)에 甑峰(증봉)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루’는 떡을 찌는 질그릇의 이름이고, 주변마을 어른들은 ‘시리’라고 발음한다. 시루봉이라는 이름에는 그 떡시루와 관련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송광사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시루봉에 자욱하게 안개가 낄 때면 봉우리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시루를 닮아 ‘시루봉’이라 부르게 되었다(현봉 전 주지스님 증언)고 한다.

둘째는 신흥마을에서 시루봉 밑 불바래기골 위에 있는 바위(석벽)의 생김새가 시루떡을 층층이 쌓아올린 모습을 하고 있어 시루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김질수님 증언)고 한다. 하지만 몇 차례의 주변 탐색에도 불구하고 석벽을 발견하지는 못 하였으며 두 이야기 중 정설이라고 판단할만한 확실한 근거는 찾을 수가 없다.

『송광사고』의 증봉(甑峰)은 민가에서 부르던 시루봉을 스님들이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루봉은 조계산의 북서쪽 줄기에 뾰족하게 솟아 송광사와 인근 마을 사람들이 신령스럽게 바라보았던 산봉우리이다.
 

연산봉(효령봉)

연산봉은 조계산의 주봉인 장군봉과 동서로 마주보고 서있는 851m 높이의 산봉우리로 조계산 서쪽 사람들은 효령봉이라고도 부른다.

장군봉에서 돌아오는 능선들보다 낮지만 여러 산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다.  

고려 말, ‘조계산’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 선암사 쪽에서는 장군봉을 청량산으로, 송광사(당시는 수선사)쪽에서는 연산봉(효령봉)을 송광산이라고 각기 다른 이름을 사용했다.

두 산이 조계산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고려 희종4년이다. 조계종의 보조국사가 수선사에서 정혜결사의 기치아래 새로운 승풍쇄신 운동으로 당시 사회를 이끌어 가던 종교(불교)의 새로운 구도(지도)이념을 요원처럼 일으켜 백성들과 지도자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게 함으로 ‘조계종’이란 시대적 값어치를 존중하여 절의 이름과 한 몸이나 다름없는 주산의 이름인 ‘청량산’과 ‘송광산’을 왕명에 따라 조계산으로 명명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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