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포에서 거차까지 - 어슬렁거리기

▲ 화포해변의 새벽

걷는 이 없는 거차 뻘밭 곁을 따라 무심히 걷는 일이나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리게 작은 봉화산을 오르는 일이나
한적한 포구와 여유로운 어촌인 화포마을을 어슬렁거리는 일은
모두 내 마음 속 뒷마당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비 개인 화포해변을 걷는다. 화포해변엔 두개의 길이 있다. 마을 위에 놓인 아스팔트 옆에 산책길이 있다. 또 마을 아래 바다를 옆에 두고 걷는 해변길이 있다. 바다를 위에서 내려 보는 길과 옆에서 끼고 보는 길, 두 길은 다르다. 눈높이에 따라 바다는 달리 보이고 또, 시간에 따라 바다는 색깔과 모양을 바꾼다. 이렇게 달리 보이지만 모두 하나의 바다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같은 사람이라도 눈높이에 따라 다르고, 언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냥 그이였을 뿐이다. 보는 내가 다른 것을, 바다나 사람이 다르다고 우긴 건 아닌지 돌아본다.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난다. 오늘은 조금 더 일찍 일어났다. 일출만큼 황홀한 새벽의 푸른빛을 볼 수 있었다. 할 일에 어깨가 무겁고, 이런 저런 말들에 지치고, 흘러가는 시간이 허무할 때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난다. 푸른 신새벽을 보면, 그 푸름이 나에게 깊숙이 들어와 어느 순간 문득 생각나고, 일상이 견뎌야할 무엇이 아니라 지켜내야 할 삶이 되었다. <이정우 기획위원>


와온 - '게으름 부릴 권리'

▲ 노월마을 칠면초

‘노동’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생계를 위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주변에 신세지지 않기 위해...
어느덧 노동은 내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 삶의 목적이 되어 버렸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현재의 나를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나는 치열했던 노동현장을 잠시 떠나 와온해변에서 ‘게으름’을 부리기로 했다.

올 들어 최고 한파라는 어느 주말 오후, 와온 해변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인적이 끊긴 와온 해변에서 농주마을까지.
겨울을 맞아 순천만을 찾은 철새들과 호화로운 가을을 보내고 이제는 낙엽처럼 바스러지고 있는 칠면초 군락지만이 나를 반길 뿐이다. 텅 빈 갯벌에 나를 눕힌다.
이곳에서는 꼭 해야 할 어떤 것도 없다. 그저 시간을 보낼 뿐.
벌거벗은 갯벌은 그동안 나를 포장해 왔던 위선과 당위를 버리라고 말한다.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비운 저 겨울 갯벌처럼 오늘 이 ‘게으름’은 내일의 ‘희망’이 될 거라고.
 
농주마을에서 와온마을로 돌아 나오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다.
와온 방파제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오늘 나의 일탈에 대한 보상인 듯 서쪽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구름 한점 없는 차가운 겨울 하늘이 만들어 낸 일몰이 장관이다. 해가 졌다고 해서 자리를 뜨면 안 된다. 진짜 노을은 해가 진 후에 나타난다. 수평선을 향해 하늘은 검푸른색에서 파란색으로, 수평선은 붉은색으로 물들고 방파제에는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고 있다.
정지해 있어야 변화를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는 오히려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느리게 살아야 한다. <임서영 기획위원>


낙안읍성 - 달빛걷기

▲ 낙안읍성의 저녁

섣달 보름을 하루 앞둔 저녁에 낙안읍성을 찾았다. 환한 달빛이 성벽 걷기에 좋았지만 갑자기 구름이 끼어 하늘이 어둡다. 인적 끊긴 성벽은 더없이 고즈넉하다. 어둠은 사소한 것들은 묻어버리고 사물의 고갱이만을 선연히 보여준다. 오래된 느티나무는 잎사귀들을 모두 벗어버린 채 굵은 줄기와 가지들을 드러낸다. 허연 하늘에 그려진 선들이 조화롭고 자유롭다.

성 안 초가집들 또한 어둠 속에 휴식을 청한다. 처마는 다소곳이 땅을 굽어보고, 지붕의 윤곽은 소박하고 부드러운 곡선이다. 커다란 꼬막 껍데기를 엎어 놓은듯하다. 격자 살에 한지를 바른 출입문으로 따뜻한 불빛이 배어나온다. 그 불빛 아래 무릎이 맞닿을 듯 아담한 방안에서 밥상을 마주하며 하루를 갈무리하고 있을 식구들의 따스함이 그립다. 연못가를 걷는데 구름을 비집고 둥그런 달이 나온다. 달은 구름을 스치듯 흐르고 연못 속에서는 또 다른 달이 일행을 뒤쫓는다. 눈을 들어보면 낮에 멀리 물러나 있던 산들이 어느덧 가까이 다가와 앉아 있다. 그 품속에 깃들인 만상은 사라지고 하늘과 맞닿은 능선만이 끝없이 이어진 검은 몸뚱이다. 우리는 알 수 없는 거대한 품속에 안겨있다.

성 밖은 온통 희끄무레한 겨울 들판이다. 쉬는 듯 텅 빈 들판에도 추위를 이기며 보리가 자라고 있을 터이다. 불현듯 들판을 가르는 농로와 논둑길을 빈둥대며 걷고 싶어진다. 일상의 무게에 짓눌린 진실과 잊고 지내던 나를 만나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김계수 기획위원>
 


순천왜성과 검단산성 - 애잔함이 가슴에

▲ 순천왜성에서 본 공단불빛

그 옛날 순천왜성은 섬과 같았다. 당시 동, 남, 북 삼면에 바닷물이 들어왔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고, 일부 복원한 서쪽의 인공해자만 볼 수 있다. 왜성 동남쪽 바로 앞에 보이는 공장과 농경지 너머 장도에는 왜군의 해상 전진기지가 있었다. 그 후 탈환하여 조선 수군의 최전방 전진기지로 활용되었다.

공장 굴뚝에서 허옇게 내뿜는 연기를 보니,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조선의 병사들이 생각나 마음이 허망하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왜성을 쌓았는데, 많은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참 애잔하다. 이순신 장군은 요새화된 왜성을 보며 적을 유인할 방책 마련에 고심했었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이순신의 백성 사랑을 생각한다.

왜성, 장도와 더불어 순천왜성대첩의 중요 무대가 되는 곳이 검단산성이다. 1996년에야 순천대 박물관 발굴조사로 백제시대 테뫼식(산봉우리에 테를 두르듯이 산성을 쌓는 형식) 석성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300m 정도의 야트막한 숲길을 오르면 산성이 보인다. 검단이라는 이름은 산이 마치 칼로 베인 듯 생겼다하여 붙여졌다.

동아시아 3국이 치열하게 다퉜던 7년간의 전투가 이곳에서 마무리되었다. 고향으로 살아 돌아가고픈 침략군의 처절한 심사와 무모한 침략을 막아내려던 병사들의 의기가 한데 뒤엉켜 애잔한 진혼곡으로 가슴에 울린다.<김은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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