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섭
순천공고 역사교사
올해도 어김없이 여수와 순천에서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행사가 열렸다. 위령제 때마다 나오시던 유족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된다. 연로하셨어도 나오신 분들을 뵈면 절로 기분이 좋다. 올해 돌아가신 유족회의 부모들이 여러 분이고, 심지어는 회원 본인도 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참혹한 사건을 겪은 이들에게 국가가 앞장서서 이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함에도 여전히 방관하고 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시각이 바뀌고 새로운 진실이 드러났음에도 예전의 시각으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까지 있으니 첩첩산중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김성곤 국회의원을 비롯한 여야의원들이 공동으로 ‘여수 순천 10·19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하여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여순사건이 한국사회는 물론 우리 지역을 뒤흔든 큰 사건이긴 하지만, 한국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이 거의 전국적으로 나타난 것이어서 여순사건만 독립적으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여순사건은 지역의 짐이 아니라 지역의 소중한 역사 자원이다. 한때 순천만의 갈대밭을 없애려고 했던 적이 있었으나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로 보존하게 되면서 순천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는가? 이번 정원박람회 폐막 공연은 ‘뮤지컬 태백산맥’이었다. 준비 기간이 넉넉하지 않은 속에서도 소설 속의 여순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분단의 극복과 통일이라는 우리 시대의 화두를 잘 녹여 내어 진한 감동을 선사하였다. 그 이전의 뮤지컬인 ‘사랑의 원자탄’에서 묘사한 것과는 사뭇 다른 내용으로 화해와 소통의 가치를 전해 주었다. 더 다듬어서 지금의 계획대로 전국 공연을 잘 펼쳐나갔으면 한다.

여수와 순천의 위령제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유족회만의 행사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지역시민사회기구의 일부 임원이 대표로 참여했을 뿐 다수의 회원, 다수의 시민이 참여하지는 않았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구성되어 진실 규명을 했으니 다 된 것으로 오인하는 듯하다. 진실 규명 신청을 하지 못한 사람도 많고, 기각 결정이 내린 분도 많은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족회쪽에서도 유족 1세대가 주로 참여할 뿐 그 자제들이 함께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특별법의 통과가 쉽게 이뤄질 수는 없다.

우리 순천은 다른 지역에 비해 지자체가 여순사건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있는 편이다. 유족들이 위령제를 지낼 수 있도록 2003년부터 경비 지원을 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권고가 있은 후에야 지원하게 된 것에 비하면 아주 선구적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건 관련지에 표지판을 세웠고, 팔마체육관 안에 상징성과 예술미를 갖춘 위령탑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순사건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지역민도 많다. 구랑실재, 순천대 구내, 동천변, 순천역 등 6곳에 세워 놓은 사건 관련지 표지판은 모두 사라졌다. 외곽 지역인 낙안 신전마을 입구에 서 있던 것도 뽑혀 있다. 순천시 문화건강센터가 운영하는 평생교육프로그램 강좌 가운데 ‘순천학’이 있는데. 여기에도 여순사건 관련 내용은 아예 없다.

순천 위령제 때 종교 의례를 할 때는 4대 종단의 종교인이 같이 나와서 하고 있다. 종교간의 화해를 먼저 시작한 것이다. 여순사건을 평화와 인권을 생각하는 매개체로 활용하려고 한다면 여순사건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지역민간의 소통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사건을 보는 눈이 보수와 진보간에 차이가 조금 있을 수 있지만 어디까지 지역민의 시각에서 우선적으로 봐야 한다.

아름다운 자연, 순하디 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곳의 지역민이 겪었던 아픔을 더 이상 감추지 말자. 오히려 이를 드러내면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로 알려진 순천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도시로 만들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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