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용창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주인공 김민우와 함께 인도 요가 스승들의 답을 들어 볼까요?

“요가는 무엇이며, 무엇을 목표로 합니까?” 삶의 목적에 대한 답을 얻은 후 김민우는 다시 리시케시의 요가 철학 선생인 달마난다에게 물었다.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인 고집멸도는 들어봤지? 요가의 정의와 목표도 이 사성제로 요약할 수 있어. 고(苦): 인생은 고통이다. 집(集):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다. 멸(滅): 고통은 멸할 수 있다. 도(道): 고통을 멸할 방법이 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 내용인 사성제인데, 사실 사성제는 부처님이 가르치기 이전부터 힌두교와 요가에 보편적으로 있었던 가르침이지. 인도에 와서 요가 수련을 한 다음 1933년에 루마니아에서 종교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아데라는 사람이 요가를 현대적인 언어로 잘 해설했는데, 이 사람은 고집멸도를 이렇게 얘기해. (1) Karma(업): 행위가 결과를 낳는다는 인과 법칙에 따라 모든 인간은 고통을 겪고 있다. (2) Maya(환상): 그 고통의 원인은 인간이 생각으로 만들어놓은 세계인 마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3) Nirvana(열반):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신의 환상을 뛰어넘은 상태인 열반(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4) Yoga(요가): 환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요가이다. 이 사성제를 보면 요가의 정의와 목표를 알 수 있지?”

“그렇다면, 요가의 전제 조건은, 우리의 인생이 고통이며, 그 고통의 원인은 우리의 생각인데, 모든 생각이 착각이나 환상에 해당된다는 거군요? 우리가 착각으로 만들어진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씀은 엄청나게 과격한 말씀 아닌가요? 이걸 못 받아들인다면 요가가 아무 의미가 없겠네요?” 김민우가 물었다.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뜻인가? 아니면 이해가 잘 안된다는 뜻인가? 내 설명이 객관적으로 어떤지를 평가하지 말고, 민우 자네한테 어떻게 들리는지만 물어봐주게. 요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니까.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서양 근대 학문의 방법인데, 그걸 하다보면 금새 쓸데없는 논쟁에 빠져 버릴 걸세. 중요한 건 자네 자신의 마음의 평화야. 이 모든 대화는 자네의 평화를 위한 것이지. 객관적인 학문이나 진리 따위는 나는 관심 없네.” 달마난다 선생이 김민우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었다. 김민우는 끊임 없이 논쟁으로 빠져드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 예 감사합니다. 제가 경험한 저의 고통들을 되돌아보면 착각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씀이 이해가 되요. 하지만, 제가 살아가는 이 세계 자체가 환상이라는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요.” 김민우가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물었다.

“그래,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면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지. 그럴수록 오히려 구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어. 자네 얘기를 해보게. 고통의 원인이 착각이라는 걸 인정할 수 있는 사례가 있나?” 달마난다 선생이 물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떤 친구랑 싸운 적이 있어요. 그럼 저는 그 친구한테 어떻게 복수를 할지 상상을 마구 하는 거예요. 또는 그 친구가 나에게 무슨 복수를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하는 거죠. 그런 상상이나 걱정이 저를 고통스럽게 해요. 그런 상상이나 하고 있는 저 자신이 한심한데, 그 상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까 고통의 원인은 착각이 맞는 것 같아요.” 김민우가 답했다.

“그렇지. 좋은 사례를 들었네. 바로 그것처럼 고통의 원인은 우리 자신의 생각이야. 생각은 죄다 착각일 뿐이고, 우리는 그런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달마난다 선생이 말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이요. 이 세계 자체가 환상이라는 말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죠?” 김민우가 물었다.

“아까 자네가 말한 사례만 놓고 보자고. 자네가 친구랑 싸울 때, 자네는 현실과 아무 상관 없는 상상을 마구 하지. 하지만, 그 상상이야말로 자네가 살고 있는 세상인 거야. 심지어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기를 죽일 거라는 상상 때문에 먼저 살인을 저지르는 거야. 상대방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데 말이지. 이 세계 자체가 환상이라는 이야기는 바가바드기타나 요가수트라 같은 여러 경전 속에 나와. 부처님도 얘기했고. 그런데, 그런 경전들은 깨달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은 다음 이 세계를 통찰한 다음 지었기 때문에, 우리처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100% 이해하기는 힘들어. 하지만, 이런 사례들을 보다보면 정말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낸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희미한 느낌이 자네도 들지 않나?” 달마난다 선생의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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