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계수
순천광장신문 발행인

차가운 광장을 밝히는 촛불의 목마름은 그대로인 채 병신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한 해를 되돌아보며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새해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는 덕담을 나누는 일조차 머뭇거려지는 세밑입니다. 힘겨운 한 해 살아내시느라 다들 애쓰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올 한 해만큼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해가 없을 듯합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뒤이은 개성공단 폐쇄, 세월호 특조위 활동에 대한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와 무산, 사드 배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급기야 우리 사회의 지배-권력 엘리트가 총동원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까지. 하나의 사안만으로도 감당키 버거운 일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국민의 기억 속에서 그 이전의 문제를 신속하게 지워 갔습니다. 모두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가 저지른 일들입니다.

소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 엘리트의 가면을 벗기고 짙은 화장으로 가려진 저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었습니다. 그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구두선의 장막 뒤에 숨어서 권력과 부를 탐하고 유지하려는 동물적인 욕망 자체였습니다.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드러난 온갖 술수와 몰염치, 권력과 재벌 간의 유착과 뒷거래, 모르쇠로 일관하며 책임을 벗어나려는 뻔뻔함 앞에서 국가 운영에 관한 최소한의 비전과 철학을 그들에게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이었는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또 우리 지역 민의의 대변자여야 할 이정현 의원은 왕당파의 선두에 서서 대통령을 비호함으로써 지역 유권자의 의사를 무시하는 한편 최소한의 품격조차 엿보기 힘든 언행을 반복함으로써 시민들의 자긍심과 지역의 위신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오래된 격언을 새삼스럽게 기억하고자 합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부와 권력을 움켜쥐고 국가와 사회를 운영해 왔던 지배 엘리트들의 허상을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제시했습니다. 그 개혁은 철저한 진상 조사, 관련된 당사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 비리를 통해 획득한 재산 환수, 비리의 실제 몸통인 재벌 개혁, 마지막으로 민주정부 수립이어야 한다는 것이 연인원 1000만 명에 이르는 촛불과 95%에 이르는 국민의 마음속에서 이미 공감을 이루었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개혁과제는 요컨대 ‘박정희 패러다임’ 혹은 ‘박정희 신화’의 폐기라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즉, 강력한 국가 권력을 바탕으로 모든 자원과 역량을 경제 개발에 투입하고, 그 성과물을 통해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정당화하면서 국민의 비판과 민주적인 요구를 억압하고 무마해 온 발전 전략이 문제를 잉태한 근원임을 인식하고, 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모든 개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두 차례의 선거에서 권력 핵심과 가까운 관계에 있다는 것을 빌미로 ‘예산폭탄’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던 후보를 민의의 대변자로 선출해 줬던 우리의 내면에도 ‘박정희 패러다임’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근본적인 개혁의 필요성은 국가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사회에 대해서도 똑같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최근 순천시의회는 내부 갈등 때문에 순천시 예산안에 대한 심사를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행정자치위원회는 추경예산 심사 거부는 물론 행정감사까지 하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에게서 위임받은 책무에 정면으로 반하는 처사입니다.

순천시도 최소한의 형식 요건을 근거로 각종 개발 사업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정치권이 시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실질적인 삶의 질이 보장되는 공평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힘쓸 때 비로소 개혁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가오는 정유년 새해는 국가와 지역을 아울러 그러한 개혁이 이뤄지는 원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동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거리에서 쉼없이 촛불을 들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 길에 우리 순천언론협동조합과 광장신문도 항상 함께 하겠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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