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살 때부터 정치를 알았다

11월 19일에 만난 순천시 조례동에 사는 79세 박오순 할머니는 어릴 적 사연을 들려주었다. 8살 때 서울에서 셋째 언니 가족과 살았는데, 친일파 반대를 외치던 형부는 당시 이승만 시절에 빨갱이로 몰려 감시를 당했다. 형부는 6.25 때 도망 다니던 중 지금까지 생사불명이고, 언니마저 장티푸스로 죽어서 13살의 나이에 3살과 9개월이 된 조카를 데리고 길거리를 전전했다. 그러다 두 조카마저 결국 아파서 죽고 혼자 남았노라고. “나는 8살 때부터 정치를, 민주주의를 알았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젊은 학생들의 모습에 실망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여기 온 학생들을 보면서, 내가 그간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고령의 나이에도 꼿꼿한 자세에 눈이 살아있어서, 그 옛날 선비를 연상시켰다. 26일에도 오셨기에, 비까지 와서 더 추운데 또 오셨냐고 물었더니, “날이 이럴수록 나라도 나와야지”라 말하며 웃으셨다. 멋진 분이다.
 

▲ 11/19일 촛불집회에서 박오순 할머니가 이정현 퇴출 피켓을 들고 있다.

이정현 뽑은 것, 책임지려 나왔다

11. 26일(토) 촛불집회에 온 마 아무개(여. 41세)씨는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인 두 딸을 데리고 처음 촛불집회에 왔는데, 아이들과 함께 온 이유를 묻자 “민주화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연향동에서 온 신혼의 오 아무개(29세)씨는 “이정현을 뽑은 것에 책임을 지기 위해 나왔다”라고 말하며, 비가 오는 날임에도 집회가 끝날 때까지 함께 자리를 지켰다.

광양에서 ‘간식시간’을 운영하는 서삼석(34세)씨 부부는 12월 3일(토) 연향동에서 촛불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자들을 응원하려고 부랴부랴 도시락을 준비했다. 원래는 300인분 이상을 생각했는데, 3살인 딸도 돌보며 준비하느라 시간이 빠듯해 수량을 다 채우질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가게가 덕례리에 있는데, 중마동 광양 집회장보다 거리가 가까운 순천 연향동을 택했다고 한다.
 

▲ 12/3(토) 촛불집회장에서 서삼석 부부가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12월 9일(금)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결과로 10일(토)의 집회는 완연하게 축제 분위기였다. 별량의 송산초등학교 학부모인 남 아무개(여. 43세)씨는 “이전부터 집회에 참석하고 있는데, 오늘은 6학년 10가구 이상이 같이 왔다. 동생까지 포함하면 30명 정도 올 것 같다. 오늘은 특별히 깃발까지 만들었다”라고 말하며, 다음 집회에도 참석하냐는 질문에 “나라 꼴이 이 모양인데, 계속 나와야죠”라고 대답했다.

중앙동에서 온 박 아무개(남. 67세)씨는 “여기(연향동) 집회에는 거의 왔다. 서울 광화문까지 간 적도 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밀알이 되고 싶어서 오게 된다”라 말하면서, “집회라 하면 옛날에는 최루탄 냄새만 진동했는데, 지금은 축제 같다. 질서정연한데다 특히 끝난 뒤에 청소까지 하는 것에 감동”했다면서, “여기 참석하는 10대들의 모습이 아주 바람직하다”라고 덧붙혔다.

순천대 일반노조원,“김기춘 몰아내야”

순천대학교 청소 용역 미화원들로 구성된 일반노조 47명과 함께 온 조윤희(여. 56세)씨는 “집회 때마다 항상 온다. 각 대학별로 일반노조가 있는데, 우린 광주지부와 집회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다.”라고 말하며, 소통하는 SNS 화면까지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나라가 튼튼해야 국민도 튼튼하다. 김기춘 등 나쁜 사람은 다 몰아내야”한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지금은 대대적인 나라 청소가 필요한 시점이다.

광양에서 온 강 아무개(남, 39세)씨는 “직장이 순천이라 평소 혼자 연향동 집회에 오곤 했는데, 오늘은 탄핵 가결을 축하하러 가족끼리 왔다”라고 말했다. 아내와 5살, 4살의 두 딸을 동반한 아빠는 “TV에서 촛불집회 소식 나오면 아이들이 “우리도 저기 가요”라고 말하곤 했다. 이런 역사적 현장에는 참석해야죠.”라며 흐뭇한 모습으로 가족을 바라보았다.

“몸이 아픈데 성형수술? 속이 중요”

매주 집회가 열리는 국민은행사거리 인근 상가에서 근무하는 문 아무개(남. 47세)씨는 촛불집회에 대한 생각을 묻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 때문에 참석은 못했지만, 마음은 항상 집회 현장에 있다”, “옆에 차가 다니는 도로 위에서 집회를 하는 이들을 보면 항상 안타까운 심정이다. 외국을 보면 도시 중심에 광장이 있는데, 순천은 없다. 인도와 도로변에서 집회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광화문광장이 생기니 어떤가. 시는 무얼 하는지... 겉만 치중하는 것 같다. 조은프라자도 아직 해결 못하면서 무얼 한다는 것인지. 그건 몸이 아픈데 성형수술하는 것과 같다. 속이 중요하다.”

▲ 11/26일 촛불집회. 신혼부부는 투표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참석했다.

12월 17일(토)에 6살 된 딸을 데리고 온 윤소영(여. 45세)씨는 광양시 덕례리에서 일한다. 사람들에게 쿠키를 나눠준 그녀에게 이유를 묻자 “지난주에 어떤 분이 초코파이를 주어 감사하여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 성탄절 전야인 24일(토)에 열린 촛불집회에서 산타 복장을 한 자원봉사자들이 시민들에게 촛불을 나눠주고 있다.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촛불집회를 위해 돕는 이들에는 경찰들도 있다. 안전하게 집회가 열리도록 차량을 통제하고, 행진할 때도 함께 걸으며 앞과 옆을 지킨다. 12월 10일에 만난 경찰은 “만약에 있을지 모를 상황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가족과 지낼 시간이 없긴 하다”라며 경찰로서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17일에 이야기를 나눈 경찰은 탄핵안 가결 이후 참석자들이 감소한 것에 대해 “이제부터가 시작인데...”라고 말했다. 윤소영 씨도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탄핵안 가결은 시작에 불과하고, 단호한 촛불의 의지를 보여줄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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