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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아이들에게는 우정과 성찰이 필요하다
심명선  |  iseem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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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호] 승인 2016.12.29  19: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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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인생술집>이라는 예능 프로를 봤다. 스타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시끌벅적 떠들거나 준비된 뻔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가 아니어서 눈길이 갔다. 카메라 앞이긴 하지만 술을 매개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힐링캠프>류의 프로그램이었다. 

초대 손님은 최근 개봉한 영화 홍보차 출연한 배우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타가 아닌 한 사람의 삶과 관계망을 생각해 봤다. 

인생 술친구가 누구냐는 MC의 질문에 서슴없이 ‘엄마’라고 대답하는 그녀. “엄마와는 비밀이 없다. 엄마도 나한테만 하는 얘기가 있다. 울컥해서 눈물 흘리시기도 하고 내가 토닥토닥 해주고 정말 술 친구 같다”고 말했다. 가장 좋은 친구가 ‘엄마’라며 자랑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딸과 엄마의 오붓한 시간이 떠올라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에 늘 자유롭지 못한 스타의 삶이 참 쓸쓸하겠구나 싶었다. 오지랖 넓게 스타에게 가족을 넘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깊은 관계를 맺는 일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겠구나 싶어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늘 친구 같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우리 아들에게 다른 친구가 필요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믿어주거나 이해하려는 가족을 넘어 아이가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기를 바란다. 결이 다른 관계가 사람을 섬세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월북 작가인 현덕의 소년 소설『집을 나간 소년』에는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잃었던 우정』에는 두 소녀가 등장한다. 보통학교를 다닐 때 남달리 정다웠던 두 소녀 가운데 명히는 가정 형편상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백화점 승강기 안내원으로 일을 하고, 숙자는 고등여학교 학생이 된다. 

처지가 달라지고부터 자주 찾아오던 숙자가 발길이 드물어지고 영 오질 않아 은근히 야속하던 명히는 교복을 입고 백화점으로 명히를 만나러 온 숙자와 같은 학교 학생들에게 놀림을 당하게 된다. 상점복을 입고 승강기 안내하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진 명히는, 자신을 상대로 웃고 떠들던 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한편이 되었던 숙자에게 누구보다도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이 더욱 분하다. 

집으로 돌아와 눈물만 흘리던 명히는 다시는 숙자를 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절교의 편지를 보내놓고 심하게 앓아눕게 된다. 숙자는 “나는 교복을 입고 너는 상점복을 입었다고 친하던 정이 달라질 리야 있겠니. 만약 그 때문으로 그리 됐다면 나는 오늘부터 이 교복을 벗어버리고 너와 같이 상점복을 입겠다”는 답장을 보내지만, 명히는 상처받은 마음에 편지도 찾아오는 숙자도 만나주질 않는다. 

명히가 밤낮으로 사경을 헤맬 때 숙자는 진정을 다해 친척 아저씨에게 사정을 말하고 불쌍한 동무를 구해주기를 간청하며 학교에도 가지않고 정성스레 간호를 한다. 드디어 명히가 깨어나고 두 친구는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서로 나누게 된다.

청소년기 아이들의 삶 속에서 친구는 부모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한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점점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친구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여태껏 부모한테 보살핌을 받는 존재였다면, 이제는 나 자신으로 바로 서서 누군가와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존재로 거듭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히처럼 친구한테 업신여김을 당했다고 느끼면 심하게 아파 죽음의 문턱을 오락가락하게 될 수도 있고, 숙자처럼 친구의 오해를 풀기 위해 심지어는 교복을 벗고 상점복을 입겠다고 선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깟 일로 뭘 그렇게까지 반응하나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성공은 어른의 평가와는 무관할 때가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 보다는 또래 친구들의 생각이 더 크게 작용하지요”라는 야우슈 코르착의 말을 깊이 새겨볼 일이다.

요즈음 아이들이 학교나 동네에서 맘껏 우정을 나누며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아닌, 오로지 경쟁과 시기의 대상인 또래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에서 같이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끊임없이 경계하고 견제하면서 무언가 남보다 더 나은 것을 해내야 한다면 극도의 피로감과 불만스런 감정이 차오를 수밖에 없다. 쉽게 화내고 쉽게 폭발해버리는 행동들, 마치 시한폭탄 같은 모습이 되고 만다. 공부만이 최고의 가치인 양 무한경쟁 속에 그 아이들을 방치한 우리 어른의 책임이다.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은 친구와의 관계에서 자신감과 여유로운 마음을 배운다. 우정을 나누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돌아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힘들고 괴롭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으려면 관계가 좋아야 한다. 친구와 부모와 교사와 관계 등 사람 사이에서 미세하고 교묘하게 교감하면서 새로운 말, 생각과 일을 창조하기도 하고 스스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교감한다는 것은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과정에서,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얻게 되는 감성의 힘이다. 그런 감성이 살아날 때 아이들은 배움도 생활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뭔가 푹 빠져서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자유로움이 있을 때 가능하다. 아이들에게 우정은 성찰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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