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우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리아가 부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리아는 5살이다. 나이답지 않게 음정과 박자가 정확하다. 피아니스트인 엄마의 영향 탓이리라. 리아의 노래는 한동안 잊힐 수도 있다. 그러나 커서 문득 그 노래를 많은 사람 앞에서 고운 옷을 입고 부르던 장면이 떠오를 수 있겠다. 어쩌면 그 장면이 먼 훗날 리아의 현실을 이겨낼 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 장면은 몇 개 없다. 그중 하나가 더 선명하다. 5살쯤 돼 보인다. 흙 마당에서 자치기를 하고 있다. 높지 않은 담장 위에는 하얀 눈이 쌓였다. 친구도 식구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죄 없는 나무막대를 치며 놀고 있다. 이 무의미하고 건조한 옛 기억은 나 혼자 방구석에 앉아 있을 때 생각났다. 이 장면은 복잡한 현실을 옆으로 잠시 제쳐두고 머리를 텅 비게 하는 신비한 효과를 갖고 있어서, 그러고 나면 비켜두었던 현실이 조금은 쉽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추억은 무언의 계시

추억은 이렇게 은근슬쩍 현실에 작용한다. 추억은 먼 옛날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전해주는 무언의 계시다. 추억이 현실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은 전혀 아니다. 추억은 차곡차곡 준비되고, 예정된 손님처럼 오지 않고, 그냥 불쑥 나타난다. 그러나 무언의 계시처럼 현실을 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다. 이런 추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은 많아질 것이다.

촛불광장에 아이들 손을 잡고 부부가 함께 나오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부모는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런 현실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토요일 저녁을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있다. 또 이런 현실을 보고 우두커니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결기를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가 커서 나중에 문득 광장의 모습을 기억하고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희망할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 가족은 역사의 기차에 무임승차하지 않았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촛불이 현실을 추억거리로 만들어

추억의 힘이 먼 미래의 어려움을 타개할 것인지 아닌지는 가능성의 영역이다. 그러나 미래에 갖게 될 추억의 힘을 믿고 오늘 광장에 나오는 것은, 현실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실천의 영역이다. 추억을 위해 촛불을 드는 것이 아니듯, 촛불은 추억의 대상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의 촛불은 암약 중인 적폐를 해소하고, 현실을 추억의 한 장으로 역사 속에 기록할 것이다. 촛불은 서 있는 광장과 함께, 없어질 현실 또한 과거의 추억거리로 만들고 있다.

아이가 우리를 추동하듯, 미래가 현재를 추동한다. 아이를 믿고 우리가 살아내듯, 미래를 믿고 현재를 살아낸다.

순천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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