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택 논설위원

우리나라 촛불혁명은 대단히 흥미진진한 현상이다. 국민 대다수가 느낀 공통점이 있다. 많은 사람이 감동과 자긍심을 느꼈고, “이제 시작이다”라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죽 쑤어 개에게 줘서는 안된다고 느낀다. 그렇다. 이제 시작이고 이번에는 죽 쑤어 개줘서는 안 된다.

우리의 현대사는 혁명이나 혁명적 변화를 통해서 기존 독재 권력을 붕괴시켰으나 새로운 체제의 완성은 이루지 못한 사례가 많다. 해방, 4․19 혁명, 80년 서울의 봄, 87년 6월 항쟁 등이 그렇다. 왜 진정 새로운 나라 건설에 실패했던가? 기존 정치세력에게 맡겨버렸기 때문이다. 혁명의 주체세력이 새로운 나라 건설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기존 정치세력에게 열매를 빼앗겨버렸기 때문이다. 즉, 죽 쑤어서 개에게 준 것 때문이다. 이번만은 아니다.

죽 쑤어 개 줘서는 안 되고, 줄 생각도 없는데, 벌써 내가 먼저 죽을 먹겠다고 설쳐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은 촛불혁명을 이용내지 편승해서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겠다는 정치집단이다. 대권과 정파적 이익의 좁고 저급한 관점으로 상황을 보고 계산하는 사람들이다.

촛불혁명의 목적은 새로운 세상, 대안세상을 건설하는 것이다. 국민은 어느 개인이나 정당의 권력욕이나 명예욕을 달성하기 위한 자원이 아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느냐는 지금 부차적이다. 어떻게 새로운 나라를 만드느냐에 모두가 헌신해야 하는 시점이다.

확실한 것은 지금의 삼권분립과 대의제는 효력이 거의 다했다는 것이다. 현 체제는 새로운 신분사회를 만들어 1%의 특권층, 귀족층 보호에 애쓰고 있다. 주인인 국민의 염원과 기대를 만족시키는데 실패했다. 900만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20대와 30대가 5포, 7포세대가 되었는데, 재벌 총수는 1년 소득이 수백억이다. 이것이 나라인가? 그동안 행정부, 국회, 법원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따라서 새로운 세상은 저들에게만 맡겨서는 안된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직접민주적인 요소와 경제적 평등이 훨씬 강화되어야 한다. 이름은 민회, 시민회의, 시민주권회의, 시민자치 등 어떻게 해도 좋다. 따라서 현재 촛불혁명의 가장 큰 과제는 어떤 방식과 경로를 통해서 그 쪽으로 발전 진화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촛불혁명의 발전을 위해서 탁월한 지도자나 혁명가를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다. 결국 믿을 수 있는 것은 집단지성이다. 즉 집단지성이 충분히 발휘되고 모아진다면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떤 뛰어난 혁명가가 책상에서 새로운 세상의 청사진을 그릴 필요가 없다. 인터넷과 SNS 등 여러 매체들 속에는 많은 정보들, 이론과 사례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촛불혁명에 참가하는 사람들 각각의 뜨거운 동경과 갈망 속에 피어나는, ‘상상력’ 그 자체가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다.

촛불혁명은 천명(天命)이다. 야당과 대선주자들은 좁고 저급한 관점에서 감히 촛불혁명을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대선에는 관심 없고 촛불혁명에 헌신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역사와 민족 앞에 바른 태도다. 매사에 경중과 선후가 있다. 우선 촛불혁명의 대의를 살리고 실현하는데 올인해야 한다.

야당이 200석이 넘는 지금은 “개혁의 골든타임”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가장 먼저 언론을 바로 세워야 한다. 다음, ‘적폐청산’에 주력해야 하고 온갖 망국적 불법조처들을 원상회복시켜야 한다. 다음 황교안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다음 정당별 비례대표 확대 등의 선거법 개정에 힘을 써야 하고, 국민소환과 국민발안 등 법 개정에 주력해야 한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대선타령만 하는 것은 천명을 거스르는 일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는 말이 있다. 그렇다. 촛불혁명은 문들 두드린다. 계속 두드릴 것이다. 그리고 문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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