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쪽 이야기7

조계산은 남도의 명산으로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는 불교문화의 중심이며, 순천사람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다. 
순천시 송광면 출신인 김배선 씨는 약 15년 동안 조계산과 그 주변 마을을 누비면서 주민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자료를 토대로,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김배선 씨의 동의를 받아 순천광장신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연재한다. 편집국



송광사쪽 이야기7 

토다리 삼거리

토다리 삼거리는 조계산의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넘어가다 보면 도보로 약 30분 쯤 지난 갈림길의 이름이다. 토다리 삼거리에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여 있다.

▲ 토다리삼거리의 이정표
▲ 토다리 위의 목교
▲ 토다리의 현재 모습

첫 번째 인조 난간이 있는 토다리를 건너면 삼거리가 되어 정면의 오르막길은 효령봉(연산봉)과 장군봉, 선암사로 가는 정상 종주길이고, 오른쪽 방향에 있는 출렁다리 형태의 목교를 건너가는 길은 굴맥이(굴목재)와 보리밥집을 거쳐 선암사로 넘어가는 길이다.

일부 등산 안내서에서 이곳을 ‘피아골 입구’라고 소개하지만 정상 방향은 ‘국골(굴등골)’이고 오른쪽은 굴맥이(골) 골짜기라고 한다. 피아골은 국골의 아래골짜기인 홍골로 들어가야 하므로 잘못된 것이다.

토다리는 나무와 흙으로 만든 다리이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통나무로 교각을 세우고, 통나무로 건너지른 뒤 그 위에다 횡목을 덧댄 다음 그 위에 도끼로 거칠게 찍어낸 널나무 쪽을 덮어 채운 뒤, 마지막으로 흙을 깔아 만들었던 흙다리이다.

‘토다리 삼거리’에서 애초 토다리가 놓였던 곳은 지금 토다리의 7~8m 아래 암반 위로 물이 흐르는 곳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도 양쪽에 다리가 놓였던 석축이 남아 있다.

애초 이곳에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계곡의 가장자리로 난 좁은 길을 따라(지금도 길의 흔적이 남아 있음) 올라와 암반위로 건너 다녔으나 여름철에 물이 불면 다닐 수가 없으므로 양쪽 언덕에 조금 높게 돌 받침을 놓고 통나무를 겹으로 건너질러 외나무다리처럼 건너다녔다. 그러다 1961년에 지금의 다리 아래 놓은 것이 최초 토다리이다.

그 후 1963년 국골의 소나무 벌채를 하면서 바닥의 암반 위로 나무를 실은 산판차가 다녔고, 1975년 무렵 지금의 위치에 튼튼하게 축담을 쌓아 (외송 마을 박인규 씨 증언) 새로운 토다리를 놓았다.

1979년 조계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통나무 토다리 위에 시멘트를 씌우고 시멘트 인조목 난간을 설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토다리 삼거리’라는 이름도 옛날의 토다리에서 비롯되었다.


산척마을의 선돌(立石)

▲ 김배선 향토사학자

선돌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선사시대부터 돌에 대한 원시적 신앙으로 받들어 모시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 신석기와 청동기시대를 지나면서 고인돌(支石墓)과 함께 민간신앙으로 뿌리내려 오랜 세월동안 신성의 대상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해온 거석문화의 산물이다.

조계산 인근 마을에는 사람들이 세운 입석도 더러 남아 있지만, 선돌로 불렸던 자연석은 대부분 그대로 있으나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그 빛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그 중에 빼어난 모양을 갖춘 자연석 선돌이 산척마을의 선돌이다.
 

▲ 산척마을 선돌의 뒷모습

산척마을의 선돌은 그 규모와 형상이 압도할 뿐만 아니라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과 함께 1960년대까지는 마을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해 온 민간신앙의 대상이었다.  

산척마을 선돌은 조계산의 남쪽 송광사 청룡 줄기 외곽에 자리 잡은 송광면 봉산리 산척마을에 있다. 산척마을 뒷산 비탈에 하늘을 향해 직선으로 솟아 마치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모양이다. 산척마을 회관으로부터 320˚방향 약 200m 거리에 있는 선(독)돌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선독개미’라고 부르는 골짜기의 왼쪽 470m 지점이다.

선돌의 크기는 하부의 둘레가 약 11m, 높이는 약6m이며, 상부 끝단의 둘레는 약 6m 정도로 매우 큰 바위이다. 이 선돌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둥글게 일직선으로 곧추선 남성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선돌의 형상이다.

산척에서는 마을이 생겨난 이래 칠성신적 숭배 대상으로 의지하며 기원하는 행례가 1960년대까지는 이어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치룬 행례를 보면 대보름날에 마을의 안녕을 빌고 감사드리는 기원제가 있고, 가뭄에는 기우제를 올렸다. 또 주민들은 출산(남아)과 무병장수를 빌었으며, 특히 어린이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형식은 그 어린이를 선돌(신)에게 팔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선돌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보면 왼쪽 옆에 60cm 정도의 거리에 굵기는 선돌보다 조금 왜소하지만 길이는 비슷한 바위 하나가 선돌의 밑둥과 나란히 길게 누워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돌을 ‘형돌’이라 부르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산척마을에 힘이 센 장사 형제가 살았다. 어느 날 사람들이 동생과 형을 부추겨 누가 더 힘이 센지 이곳에서 씨름을 하도록 하였는데, 사람들은 형이 이겨야 마을이 잘되고 지면 재앙이 올 것이라고 믿고 형이 이기기를 바랐다. 하지만 형이 지고 말자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 때 이긴 동생이 선돌이고, 그 옆에 누워 있는 바위가 형이라고 하는데, 이 후로는 마을에 장사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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