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종삼
순천시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촛불로 뒤덮인 광장의 열기는 뜨거웠고 그 힘은 위대했다. 지난 9일 국회에서 가결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민심의 준엄한 심판이자 되찾은 주권의 존엄을 상징하는 승전비였다.

이번 사태로 대한민국은 국제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하였고 국격은 훼손됐지만, 평화적인 촛불집회만큼은 외신에서도 명예로운 시민혁명이라며 칭찬일색이다. 어이없는 추측이 사실로 밝혀지고 분통 터지는 막말이 이어졌지만, 국민들은 사이다 같은 패러디로 울분을 해소하고, 함께하는 공연으로 상처를 보듬으며, 집회를 축제로 승화시켰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남아있지만, 국회 표결에서 보았듯 지금까지 드러난 위법사실과 촛불에 담긴 민의를 헌재도 외면할 순 없을 거란 예측에 무게추가 기우는 형국이다. 설령 기각된다 하더라도 퇴진 시기가 늦춰질 뿐 식물대통령에게 내려진 정치적 사망선고가 철회되긴 어려워 보인다.

촛불민심이 이끌어온 기적 같은 국면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드리운 일말의 불안감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이 불안감의 정체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던 1987년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우린 그때도 빛나는 승리를 거뒀지만 대선에서의 참담한 패배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민주화제단에 바쳐진 열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거리에 흘린 국민들의 피눈물을 통해 쟁취한 직선제는 야권의 분열로 인해 시쳇말로 ‘죽 쒀서 개 준’ 꼴이 돼버렸다. 믿기지 않는 개표결과를 지켜보며 “내가 이러려고 석유 마시고 분신 했나 자괴감이 들어 괴로웠을” 수많은 소주병들에게 밤새 사죄의 술잔을 올렸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그사이 국민들 손엔 화염병 대신 촛불이 들렸고 미완의 시민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행진은 다시 시작됐다. 대선 잠룡으로 불리는 유력 정치인들이 앞 다퉈 선명성과 일관성을 경쟁하며 숟가락을 얹어보려 하지만 이번 압도적 탄핵안 가결은 온전히 촛불민심의 공로라는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최순실 게이트’가 베일을 벗고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도 정치인들은 각자의 셈법에 따라 이해득실을 따지기에만 급급했다. 국민들은 희망 없는 여의도에 기대지 않고 광장에 모여 한결같이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위임받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에게 엄중히 그 책임을 물었다.

탄핵안 가결로 소기의 성과는 거뒀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이번 사태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치고, 적폐를 일소하며, 구체제를 청산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무능하고 뻔뻔한 대통령을 교체하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국민들의 뜻을 수렴해 앞으로 촛불집회는 우리사회의 다양한 쟁점과 대안이 수시로 논의되고 소통되는 참여의 광장으로 그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집회를 통해 불붙고 광장에서의 성숙된 시민의식을 동력으로 구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체제에 대해 토론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함께 그려보는 것이다.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여러 제도를 실험해보는 것도 의의가 클 것이다.

특히 중앙정치에 비해서 관심과 열기가 현저히 낮은 지역정치에 광장을 활용한 직접민주주의제도를 성공적으로 접목시킨다면 지방자치제를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로 거듭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아집과 탐욕이 초래한 30년 전의 참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촛불집회의 열기를 지키고 승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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