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섭 
    순천여고 역사교사

지난 10일, 제법 추운 초겨울임에도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1000여 명의 순천 시민들이 연향동 국민은행 앞에 모였다. 바로 전에는 새누리당 대표 이정현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서 이동한 터였다. ‘박근혜 퇴진’과 ‘이정현 사퇴’의 함성이 가득했다. 9일(금) 국회에서 234표로 탄핵안이 가결된 뒤인데다, 80만이 모인 서울 집회의 상황을 대형화면으로 보면서 전 국민과 함께하고 있다는 연대감에서 마음만은 푸근했다. 이번 사건을 불러 온 박 대통령은 정작 자신의 책임을 알지도 못하고 있다. 오히려 보수 일색으로 구성해 놓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미련을 두고 하야를 거부하는 상황에 시민들의 분노는 끓어오르고 있다.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랑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단숨에 무너뜨린 것은 온갖 희생을 감내한 촛불 시민이었다. 대부분의 시민이 집에서 평온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 즈음에 이들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아스팔트에 나왔다. 초등학생이 연단에 올라 ‘이게 나라냐’며 자랑스러운 나라가 결코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를 서슴치 않는 것을 보면 기성세대로서 정말 부끄럽다. 플라톤이 했다는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라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날 때가 없다.

현 정권만큼 국민으로부터 총체적 부정을 당하고 있을 때는 없었다. 그런대도 이런 정권에 부역하고 있는 순천 출신 인사들 때문에 심사가 편치 않다. 교육 도시의 명성에 맞는 건실한 지도자를 가려 뽑지 못하고, 지역을 발전시켜 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이들을 뽑은 유권자의 책임이 크다.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좋은 법을 만들고, 국가 예산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도록 행정부를 감시해야 한다. ‘예산 폭탄’이라는 말을 쓴 자도 문제이거니와 여기에 기대를 걸었던 순천 사람이 있었다면 정말 잘못한 것이다. 한정된 국가예산을 특정 지역에 퍼붓는 것은 전혀 정의롭지 않다. 소소한 사업 몇 가지를 가져왔다고 해서, 더욱이 호남권 직업체험센터(잡월드)를 먼저 준비해오고 있던 광주에서 순천으로 돌린 것에 박수 보낼 수는 없다.

이정현 국회의원에게 더 분노했던 것은 그의 정치 행태였다. 국민의 마음보다 대통령의 심기를 잘 보전하여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데 급급했다. 국민 안전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집권 세력으로서 반성하기는커녕 관련 보도를 통제하려 했다는 것으로 온 국민의 분노를 샀다. 근래에는 막말과 기행을 일삼아 온갖 조롱의 대상이 되면서 그를 선출한 지역민까지 함께 매도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순천은 한때 진보정당 출신인 김선동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하여 진보적인 도시로 인정을 받은 적도 있다. 뚜렷한 범죄 사실이 없는데도 정당이 해산 당하고,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직을 박탈한 원인이 이번 박근혜-최술실 게이트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신을 떨어뜨리려 출마했다’는 이정희 대표의 발언에 앙심 품은 박근혜의 증오 때문이었음이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 일지를 통해 확인되었다. 치밀하게 기획된 종북 여론몰이에 야당도 힘을 쓰지 못했고, 순천시민들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 그 영향으로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 출신 시의원을 뽑아주지 않아 시의회를 특정 정당으로 채워버림으로써 서로 비판하고 견제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 일말의 기대를 하였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전혀 여성적이지 않았다. 반대세력을 포용하기보다 적대시하였고, 친위세력 중심으로 불통의 정치를 이어왔다. 이전의 민주정부에서 정착되었던 토론과 기자회견은 사라졌고, 결국 탄핵받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박근혜 대통령식 리더십 정치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정현 국회의원처럼 권력에 빌붙어 개인적 이익이나 명예를 취하고 있는 부역 세력은 또 얼마나 많은가. 또 이들을 공격하면서 내 스스로 이러한 것을 닮고 있지 않은지 살필 일이다. 이제 대통령과 그 국회의원의 탄핵에 멈추지 않고, 우리 지역의 ‘박근혜’ ‘이정현’도 함께 탄핵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촛불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상층부에서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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