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피터 레이놀즈 글, 그림 / 문학동네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하루 뉴스를 놓치면 기사를 모아 놓고 공부해야 할 정도로 매일 달라지는 요즈음이다. ‘박근혜 퇴진’ 촛불이 켜진 지 이제 한 달. 불통 대통령의 버티기가 계속될수록 ‘시민’들의 ‘결의’ 역시 날로 높아져간다. 지난 주말, 눈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촛불은 변함없이 타올랐고 더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듯 TV 앞에 모여 앉았던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다. 서바이벌과 ‘나만 아니면 되지’의 주말 예능을 뒤로 하고 ‘혹시라도 번거롭고 귀찮아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못할까 싶어 우비를 챙기고 우산을 들고 ‘나라도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모였다. 역사의 현장에서 낯선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결의를 다지고, 챙겨 온 간식을 건네며 서로를 위로한다.

시민발언대에 오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감동을 받는다. 열 일 제치고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과 ‘이게 나라냐’며 조목조목 문제점을 꼬집는 논리 정연함, 목청을 쥐어짜며 구호를 외치는 사람의 울분에 공감하며 한 마음이 된다. 특히 어린이 청소년들의 힘있는 목소리에 사람들의 박수 소리와 환호가 높다. 참 아이러니하다. 각종 풍자와 패러디가 넘치는 집회 현장에서 ‘제 모의고사 시험지보다 나라 사정이 더 형편없다’거나 ‘이 시간 여기 말고 학교에서 영어 수학 숙제 할 수 있게 똑바로 정치’하라는 따끔한 충고와 ‘이러려고 공부했나. 자괴감이 든다’는 청소년들의 기발함과 재치에 감탄하며 같이 웃고 있는 나 자신과 어른들을 보면서 민망하다. 더욱이 시민발언대에 오른 어린이 청소년들의 당차고 의기 넘치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학교 누구냐며 ‘똑똑하다’ ‘귀엽다’ ‘기특하다’ 등 선심 쓰듯 칭찬을 아끼지 않을 때, 우리에게 그럴 자격이 있나 싶어 낯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당당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뿐일텐데, ‘꼰대’마냥 대견스러워하며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건 아닌지 자문해 본다. 어른들에게는 ‘똑똑하다, 귀엽다, 기특하다’고 칭찬하지 않으면서 유독 아이들에게 이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뭘까? 문제는 칭찬의 여부나 내용이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다.“아이들을 진지하게 대한다면 그들의 능력에 놀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지각 능력에 놀랄 때가 많은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야누슈 코르착의 말을 되새겨 볼 일이다.

 “와! 눈보라 속에 있는 북극곰을 그렸네.”

“놀리지 마세요! 전 아무것도 못 그리겠어요!”

미술 시간이 끝났는데도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고 의자에 꼼짝 않고 있는 베티에게 선생님은 상냥하다. 수업 시간에 딴 짓 했냐며 벌을 주지도 않고, 따뜻한 말로 위로하며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보라고 한다. 선생님의 말씀에 베티는 뾰루퉁한 얼굴로 도화지 위를 연필로 힘껏 내리꽂는다. 한참을 살펴보던 선생님은 도화지를 베티 앞에 내려놓으며 이름을 쓰라고 한다. 일 주일 뒤 미술 시간, 선생님 책상 위에는 번쩍거리는 금테 액자가 걸린다. 베티가 그린 작은 점 그림이다.
 

 


“흥! 저것보다 훨씬 멋진 점을 그릴 수 있어!”

베티는 이제껏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수채화 물감을 꺼내어 점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그린다. 베티는 더 멋진 점들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여 작품 전시회를 연다.
베티의 '점' 작품 전시회를 보며 한 아이는 베티의 미술 실력을 무척 부러워한다. 자를 대고도 선을 똑바로 못 그려 고민인 그 아이에게, 베티는 미술 선생님이 자신에게 해줬던 그대로, 하얀 도화지를 주며 한번 시작해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가 그린 비뚤비뚤한 선을 한참 바라보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자! 이제 여기 네 이름을 쓰렴.”

선생님은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베티에게 작은 ‘점’ 그림 조차 존중해주었고,  베티 스스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켜봐주는 따뜻한 시선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독창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리고 따뜻한 시선을 받았던 아이는, 또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전달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한 때 베스트셀러였던 책제목이기도 한 ‘칭찬 열풍’의 대명사다. 긍정의 언어로서 칭찬의 유용성이야 굳이 여기서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유독 교육과 육아에서 이것은 필수 덕목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교사나 부모는 때로 ‘영혼없는’ 칭찬을 하기도 하고, 강박적인 끝없는 칭찬과 긍정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화를 내기도 한다. 현실의 아이들은 베티처럼 늘 성공하지는 못한다. 자기만의 세계를 찾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많은 아이들이 더 많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칭찬의 기술의 아니다. 베티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의 ‘놀리지 마세요’라는 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야 할 일이다. 어쩌면 우리들보다 훨씬 더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 세상에 분노하고,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린 ‘시민’의 한 사람에게 함부로 칭찬할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키워지는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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